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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RG]트럼프 입 못막은 美의 죄? 코로나 와중에 “마스크 불지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스크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가족이 코로나19에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마스크는 절대 안 쓴다”

SNS에 등장한 "마스크 불 태우자" #정치적 편가르기가 만든 '마스크 논쟁' #'노 마스크' 고수, 남성 표 잡기용? #100년 전 마스크는 애국심의 상징

지난달 25일 미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NC)주에 거주하는 애슐리 스미스는 보건용 마스크를 불태우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습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보이기 위해섭니다. NC주는 최근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했는데요. 스미스는 “마스크는 ‘이타주의’가 아닌 ‘통제’를 상징한다”며 “마스크가 자유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일부 주민들이 SNS에 올린 마스크 불지르기 영상. 이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며 '마스크 불지르기 운동' 참여를 권하고 있다. [reopenNC 페이스북 영상 캡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일부 주민들이 SNS에 올린 마스크 불지르기 영상. 이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며 '마스크 불지르기 운동' 참여를 권하고 있다. [reopenNC 페이스북 영상 캡처]

미국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곳들이 늘면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른바 '마스크 혐오자(mask hater)'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권유했다고 총을 쏘고, 방역지침을 내린 공무원에게 온갖 협박을 퍼붓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보건당국자는 살해 협박을 받았고, 워싱턴주의 한 공중보건 공무원은 협박성 문자 폭탄에 시달렸습니다. SNS에서는 스미스를 따라 마스크를 불태우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마스크를 두고 극단적 행동까지 하는 걸까요. CNN과 NBC 등 현지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념 전쟁에 주목합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마스크가 정치적 상징물로 부상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미국에 등장한 마스크 논쟁의 이면을 들여다봤습니다.

노골적으로 변한 트럼프 대통령의 ‘편 가르기’

지난 23일(현지시간) CNN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들의 저항의식에 불을 질렀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미국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범당할 때 반항심이 커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에 ‘개인 자유 침범’ 프레임을 씌웠다는 겁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주민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며 마스크에 불을 붙이고 있다. [reopenNC 페이스북 캡처]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주민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며 마스크에 불을 붙이고 있다. [reopenNC 페이스북 캡처]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 브리핑에서 “마스크 착용은 권고사항이다. 개인 선택에 달렸다”고 말해 마스크 논쟁에 불씨를 던졌습니다. 이후 '노 마스크'를 줄곧 고수하더니 지난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미국인은 나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편 가르기’에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공화당’, 쓴 사람은 ‘민주당’. 이런 식으로 말이죠. 실제 NORC공공보건연구센터는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에 비해 마스크를 착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조사까지 발표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마스크를 쓴 채 질문하자 "잘 들리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벗고 질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백악관 유튜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마스크를 쓴 채 질문하자 "잘 들리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벗고 질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백악관 유튜브]

안 쓴 트럼프, 쓴 바이든…남성 표를 잡아라  

마스크 정치화는 ‘편 가르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검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끼고 참전용사 기념관을 방문한 사진을 리트윗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문구도 적혔습니다. 마스크가 얼굴 절반을 덮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뜻으로, 바이든 전 부통령을 조롱한 겁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골프장에 나섰습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건강한 남성으로, 바이든은 연약한 남자로 각인시키려 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난 5월 25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백악관 경내를 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같은 날 마스크를 쓰고 현충일 헌화에 나선 조 바이든 전 부통령.[AFP=연합뉴스]

지난 5월 25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백악관 경내를 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같은 날 마스크를 쓰고 현충일 헌화에 나선 조 바이든 전 부통령.[AFP=연합뉴스]

NBC의 커트 바델라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성 유권자’를 겨냥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사진을 리트윗했다고 주장합니다. 바델라의 따르면 갤럽의 남녀 마스크 착용률 조사 결과 남성의 마스크 착용률(29%)이 여성(44%)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상당수 미국 남성은 “얼굴을 덮으면 부끄러움이 많고, 연약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바델라는 갤럽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남성 유권자의 무의식을 노렸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 두 장의 사진이 2020년 미 대선을 대변할 '로르샤흐 검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르샤흐 검사는 좌우대칭의 불규칙한 잉크 무늬를 보고 어떤 모양으로 보이는지를 통해 보는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심리진단검사입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 주 포토맥 폴스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 주 포토맥 폴스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두 장의 사진의 해석 방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구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보수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건강한 사람’,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연약한 사람’으로 볼 것이고, 진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책임한 사람’,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공중보건을 책임질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나 실제 바델라가 보수와 진보 인사들에게 두 사진을 보여준 결과는 달랐습니다. 보수 인사조차 “마스크를 안 쓴다고 남성성이 강조된 건 아니다”라며 “마스크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 쓰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100년 전엔 애국심, 지금은 정치 상징물

미국의 마스크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 때도 마스크 착용을 두고 사회적 대립이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마스크는 애국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주 정부들이 1차 세계대전에 유행했던 애국 캠페인을 마스크 쓰기에 적용한 영향이 컸습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찰관이 시민의 마스크 착용을 돕고있다.[캘리포니아 주립도서관, EPA=연합뉴스]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찰관이 시민의 마스크 착용을 돕고있다.[캘리포니아 주립도서관, EPA=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918년 애국심의 상징이었던 마스크가 2020년 코로나 사태에 정치적 상징물로 변질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을 법으로 규정한 곳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입니다. 시민들은 외출 시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고, 마스크 미착용자는 벌금을 물거나 철장 신세도 졌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반대파가 있었습니다. 마스크 반대파는 ‘안티 마스크 리그(마스크 저지대)’라는 이름의 시위대입니다.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안티 마스크 리그는 마스크를 쓰는 건 연약한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권유한 의사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도 높였습니다. 마스크 착용자를 ‘까다로운 사람’, ‘개인 자유주의 침범자’, ‘유행만 좇는 사람’이라고 놀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마스크 착용 찬성파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법은 독감 환자가 크게 줄어들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트럼프가 만든 ‘마스크 논쟁’, 득 될까?  

과거에도 미국 정치는 다양한 건강 관련 이슈를 논쟁거리로 삼았습니다. 2016년 미 대선에서는 ‘낙태’가 중심에 섰습니다. 그때도 공화당은 ‘개인 자유’, 민주당은 ‘공공 보건’을 외쳤습니다. 각 당의 정치철학에 따르면 공화당은 여성의 개인 권리를 위해 ‘낙태’를 찬성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화당은 ‘낙태 반대’, 민주당은 ‘낙태 찬성’을 외쳤습니다. 주요지지 세력이자 투표할 확률이 높은 기독교인들의 표를 노린 겁니다. 반면 민주당은 여성인권 프레임을 씌워 ‘낙태 찬성’을 외쳤습니다.

1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반인종주의 시위대(왼쪽)과 21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연설 현장. 시위대는 마스크를 썼고,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1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반인종주의 시위대(왼쪽)과 21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연설 현장. 시위대는 마스크를 썼고,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마스크는 2020년 미국 대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자유’를 내세우며 마스크 착용 반대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 올린 마스크 논쟁이 득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스미스의 영상에는 그를 비판하는 여론이 우세합니다. 스미스의 게시글에는 “나도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한다. 하지만 마스크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 문제다. 마스크를 태울 거면 차라리 기부하라”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ABC방송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24~25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응답자(579명) 가운데 89%가 외출 시 마스크 등을 착용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결과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는데요. 응답자 중 공화당원의 79%가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하겠다는 답을 내놨다고 합니다. 23일 CNN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때 마스크 착용 의무화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며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이제는 역사가 남긴 교훈을 따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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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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