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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권력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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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던 1952년 봄, 트루먼 대통령은 이미 아이젠하워가 자기 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 주인이 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오벌 오피스의 책상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맥아더 해임의 대가 크게 치른 #트루먼의 교훈 벌써 잊혀졌나 #설득되지 않는 힘의 과시 난무 #시민은 독재로 영원히 죽는다

“아이젠하워는 이 자리에 앉을 거야. 그리고는 ‘이거 해, 저거 해’라고 지시하겠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대통령 자리는 군사령관하고는 다르거든. 가엾은 아이크. 그는 곧 이 자리가 심한 좌절감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되겠지.”

알다시피 트루먼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유엔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를 해임한 대통령이다. 장수가 말도 갈아타지 않는다는 전쟁 중에, 살아있는 전설에 가깝던 전쟁 영웅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가. 이후의 상황 전개를 보면 이해가 된다.

해임된 맥아더는 특유의 콘 파이프와선글라스 차림으로 대중의 환호 속에 귀국한다. 이어 맥아더 해임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상하원 합동청문회가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청문회는 “대통령 해임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며 트루먼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승리의 대가는 컸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한국전쟁의 목표를 맥아더가 주장하는 ‘승리’가 아니라 ‘협상을 통한 평화’에 두고 있던 트루먼의 의도가 노출된 것이다. 그렇게 패를 까놓고 휴전협상을 시작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헨리 키신저의 평가는 이렇다.

“휴전협상이 막 시작됐을 때 (...) 군사작전을 중지함으로써 (...) 우리는 중국인들이 타협을 원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카드를 스스로 없앴다. 2년 동안 지루한 협상으로 좌절감을 맛본 것은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이런 결과에 비하면 트루먼에 대한 신뢰 추락은 대가라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맥아더 해임이 추인된 건 대통령 측의 조리 있는 주장 덕분이었다. 트루먼의 자조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강력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지 못하면 어떤 조치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대통령제에 관한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 같은 이가 “대통령 권력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선데이 칼럼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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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트루먼 이후 고작 반세기 조금 더 지난 오늘날 흐름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도처에서 설득되지 않는 힘을 과시하는 권력이 난무한다. 그러다 보니 제도권 권력끼리 충돌한다. 과시가 법 테두리를 넘나들면서 특히 사법 권력인 검찰과 부딪힌다. 우리네 주변국들이 죄다 그렇다.

설득되지 않는 권력의 과시를 가장 즐기는 이는 트루먼의 까마득한 후배인 트럼프 대통령 같다. 막무가내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듯한 그는 얼마 전 자신이 임명한 뉴욕 남부지검장을 해임했다. 말은 다르게 하지만 측근에 대한 수사를 멈추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 지검장은 이미 트럼프의 집사로 불렸던 변호사를 기소해 3년형을 받게 했던 인물이다. 각종 경로로 사임을 압박하다 지검장이 거부하자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법무장관의 손을 빌려 자른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 역시 검찰청법을 멋대로 개정하려다 반대 여론에 밀려 후퇴했다. 내각이 인정하면 검사총장(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의 정년을 3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이었다. 검사의 인사권을 틀어쥐어 검찰의 중립성을 흔들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다분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지지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밀어붙였을 게 분명하다. 이 또한 기시감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헌법을 개정해 다섯 번째 대통령(사실상 종신 대통령)직에 도전하려는 듯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올초 검찰총장을 전격 해임했다. 15년째 총장으로 재직해온 자신의 최측근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요 범죄를 수사하는 연방수사위원회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내각이 총사퇴하는 상황에서 검·경의 갈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터다. 신임 총장으로 연방수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시켰으니 푸틴이 경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역시 많은 본 듯한 데자뷔다. 전임 총장 역시 20년 전 검찰 인사 파동 때 총대를 멨던 인물이란 게 아이러니다.

사실 남 욕할 게 아니다. 우리 모습부터 볼썽사납다. 대통령이 임명했고, 여당이 극찬하던 검찰총장을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못 내쫓아 안달이다. 인사권을 휘둘러 수족을 자르고 꼬투리를 잡으려 혈안이 돼 있다. 이유도 웃긴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던 대통령 당부를 잘 따른다는 이유다. 그러니 권력 행사에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력이다. 설득되지 않은 힘을 사용하는 건 다름 아닌 독재권력이다. 현 정권이 그토록 미워하고 단죄하려는 5공 권력처럼 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속설을 진리로 만들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트루먼의 경우처럼 설득되지 않는 권력은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는 권력자만 치르는 게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 설명이 있다. 우리뿐 아니라 주변국 권력자들이 모두 귀담아들을 내용이다.

“독재는 습관이다. (...)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 사람과 시민은 독재로 인해 영원히 죽는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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