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착한뉴스] 불법체류 외국인도 품었다, 화성 천사의 특별한 '공정 마스크'

중앙일보

입력

면 마스크 나눔 캠페인에 참여한 봉사자들이 마스크를 제작 중이다. 독자 제공

면 마스크 나눔 캠페인에 참여한 봉사자들이 마스크를 제작 중이다. 독자 제공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고 생각했죠. ‘우리만 조심한다고 코로나 19를 이겨낼 수 있을까?’”

지난달 31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더불어숲페어라이프센터’의 임영신 대표는 직접 만든 면 마스크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이곳에서는 지난 3월부터 재봉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국으로 확산하던 때였다. 임 대표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공정무역의 취지가 떠올랐다”며 면 마스크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마스크 절실했던 외국인 노동자

온 국민이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던 마스크 대란 속에서 임 대표는 ‘면 마스크 나눔 캠페인’을 시작했다. 마스크 나눔의 대상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임 대표는 “마스크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회 분위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소외됐다”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마스크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들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진행된 면 마스크 제작에는 남편 더불어숲동산교회 이도영 목사가 힘을 보탰다.

마스크 제작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툰 솜씨와 부족한 인원으로 마스크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손수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며 마스크를 만들었지만 두세 명이 만들 수 있는 마스크는 고작 4~5개에 불과했다. 임 대표는 “아무리 속도를 내고 싶어도 건너뛸 수 없는 한 땀이 있음을 바느질이 가르쳐주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택배로 생필품 기부도

마스크와 생필품은 상자에 담겨 전국 각지의 기부처로 보내졌다. 독자 제공

마스크와 생필품은 상자에 담겨 전국 각지의 기부처로 보내졌다. 독자 제공

좋은 취지에 공감하는 교회 교인들과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마스크 제작은 속도가 붙었다. 기술자들이 합류하고 재봉틀이 들어섰다. 평생 패브릭(섬유) 제품을 만들어온 사람은 마스크 도면과 제작 기법을 전수했다. 마스크 제작에 참여한 유기숙(58)씨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다른 재능을 살려 마스크 제작에 참여했다”며 “바느질에 서툰 사람은 포장지에 스티커를 붙이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 두기로 몇몇 참여자들은 집으로 원단과 재료들을 가지고 가 부업처럼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임 대표가 페이스북에 ‘면 마스크 나눔 캠페인’ 소식을 전하자 입소문이 나며 전국 각지에서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직접 참여가 어려운 사람들은 생필품을 택배로 보내 기부하기도 했다. 나눔 대상도 발달 장애 어린이집, 이주민의 집, 시각장애인협회 등으로 넓어졌다. 임 대표는 “매주 남은 마스크와 생필품들을 모두 담아 ‘이번 상자가 마지막이야’하고 보내면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기부 상자들이 배달됐다”며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셔서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고 말했다.

"위기 속에서 모두가 안전해야"

두 달 동안 진행된 캠페인에서 100여명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총 1600여장의 마스크를 만들었다. 마스크는 150개의 택배 상자에 담겨 전국 11곳의 기부처에 5차례에 걸쳐 전달됐다. 상자에는 마스크뿐만 아니라 기부받은 세제와 수건, 치약, 바르는 파스 등의 생필품도 함께 담겼다.

만들어진 마스크는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도 전달됐다. 임 대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회사에서조차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아 코로나 19로 인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싱가포르를 예로 들었다. 한때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 불리던 싱가포르는 이주 노동자 기숙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다. 임 대표는 “한국에만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40만명이고 대부분 열악한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해야 우리 모두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공포와 혐오 대신 환대와 연대”

캠페인에 동참한 네팔인 움씨(가운데)가 센터를 방문해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독자 제공

캠페인에 동참한 네팔인 움씨(가운데)가 센터를 방문해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독자 제공

지난달 8일에는 네팔인 움씨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직접 센터를 찾았다. 움씨는 임 대표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스크와 생필품을 함께 전달했다. 임 대표는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라며 “마스크를 안 쓰고는 어딘가 외출하는 것조차 위험하고 꺼려지는 상황 속에서 공포와 혐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환대와 연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