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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당론 없애는 당론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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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대통령 중심제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집행력이 높다고 배웠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행정부 결정을 국회가 다시 한번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행력이 높은 건 내각 책임제다. 다수당 중심부가 내각을 구성하는 탓에 내각 결정이 곧 의회 결정이 된다. 미국과 일본을 보면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독 미군 감축 지시’엔 야당은 물론 친정인 공화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봇물이다. 하원 군사위 공화당 의원 대부분이 감축 반대 서한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얼마 전에도 시리아 철군을 요구했다가 공화당 반기로 미뤘다.

‘북한 국회 같다’ 소리 듣는 건 #여당 귀가 청와대만 찾기 때문 #당론이 전부면 300명 필요없어

일본은 1당이나 연립 집권당이 뭉치지 않으면 내각이 무너진다. 정당이 정치 중심이고 의원들은 당론을 따라야 한다. 여당, 야당이란 용어 자체가 일본에서 나왔다. 일정 기간 다수 정파에 전권을 줘 국정 효율성과 책임정치를 모색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인지 단순 비교는 어렵다. 동질적 사회냐 분열 사회냐, 분열이 일시적이냐 구조적이냐에 따라 작동 방식이 서로 다르다.

문제는 우리 같은 짬뽕 구조다. 대통령제 국가가 맞는데 국회는 내각제다. 의원들이 당론에 꽁꽁 묶여 대통령당과 반대 당뿐인 국회는 당론과 당론이 부딪치기 일쑤고 그러면 곧장 동물 국회, 식물 국회, 아니면 동식물 국회다. 통법부거나 아니면 무(無)국회로 직행하기 십상이다. 이걸 바탕으로 역대 대통령은 예외 없이 삼권분립을 무시한 채 ‘헌법 위의 대통령’ 노릇에 익숙했다.

당연히 적폐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대통령제 국가면 행정부 견제가 국회의 으뜸 존재 이유다. 국회법에 ‘의원은 소속 정당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건 법이 그렇다는 거고 실제론 군사독재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대선주자, 제왕적 당 대표가 당론이다. 태영호 의원은 ‘국회에 와 보니 북한 최고인민회의 같다’고 적었다.

공수처 법안에 기권표를 던졌다고 전직 의원까지 보복성으로 징계한 집권당이다. 찬성 당론을 어겼다고 시원하게 패대기를 쳤다. ‘인민의 대표’가 그렇다. ‘닥치고 당론’이 헌법이나 법률보다 우선이다. 문제는 국회 개원부터 당론이란 완력으로 힘자랑인 초거대 여당이 브레이크 없는 졸속, 과잉, 편향 당론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5·18 왜곡 처벌법이 있다. 허위사실 유포는 현행 형법에서도 엄중하게 다룬다.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건 5·18 왜곡은 큰 범죄고 4·19 왜곡은 작은 범죄란 뜻인 모양이다. 통과되면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등의 발언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의 도덕성 검증 부문을 비공개로 하자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도 맥락을 보면 거의 당론급이다. 불과 얼마 전 공직 후보 5대 원칙이니 7대 기준이니 하는 걸 만들어 홍보했던 당이다. 더 기막힌 건 1호 법안으로 추진한다는 ‘일하는 국회법’이다. 의원 불출석을 일일이 따질 생각이란다. 겉으론 번듯해 보이는데 그런 식의 일하는 국회법이라면 이미 있다. 각 상임위는 법안심사소위를 매달 두 번 이상 연다고 못 박았다. 물론 시행한 상임위는 없다. 당내엔 쌓여 가는 당론과 다른 생각도 있을 텐데, 입 밖에 낼 간 큰 여당 의원도 없다.

의원들이 게을러서 불임국회로 달린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진짜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면 의원들 출석 체크보다 입을 푸는 게 먼저다. 여당은 무조건 청와대에 복종하고 야당은 구색용인 정치를 깨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여당은 당명이 민주당이다. 독재 정권과 싸우며 민주화 투쟁을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나불거리지 말고 따라만 오라’는 게 민주적 가치는 아니다. 다음 주 ‘금태섭 징계 재심’이 좋은 기회다. 정권 내내 남들 두들겨 팼으면 이젠 정말로 내 적폐를 돌아보고 청산할 때다. 당론 없애는 당론을 만들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