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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대작 무죄 확정 조영남 “본격 그림 그리라는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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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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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75·사진)씨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조영남의 그림 대작 관련 사기 혐의 선고기일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 대법원도 무죄였다.

미술계 “법정 아닌 학술 논의 대상” #진중권 “진짜 문제는 예술가 집단”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모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송씨를 ‘독자적 작가’라고 봤고, 조씨의 ‘그림 대작’도 구매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화투 소재의 작품은 조 씨의 고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며, 송씨를 ‘기술 보조’로 봤다.

대법원은 이날 “원심은 (실제 그림을 그린 이가) 작품 구매자에 반드시 필요 혹은 중요한 정보라고 보지 않았다. 미술 작품이 위작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이상 기망이라 볼 수 없다”며 원심 판단에 수긍했다.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조수 도움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미술계 관행이므로 사기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조영남씨 대작 의혹 사건의 그림 가운데 하나로 검찰이 제시했던 ‘병마용갱’. [연합뉴스]

조영남씨 대작 의혹 사건의 그림 가운데 하나로 검찰이 제시했던 ‘병마용갱’. [연합뉴스]

판결에 대해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애초 법정이 아니라 학술대회에서 논의했어야 할 사안이었다”며 법원이 상식적인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영남의 작품을 개념 미술로 보면 무죄이고 전통적인 평면 회화로 보면 대작으로 볼 수 있는데, 설사 대작이라고 처벌받은 경우는 없다”며 “정성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에 정량적인 잣대를 들이대 유죄로 판결했다면 예술의 존립 근거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고 밝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한국에서 벌어진 이 상황은 양자역학 시대에 뉴튼 물리학 얘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며 “진짜 문제는 전문가 집단이다. 상당수가 예술가라는 것을 기능의 문제가 아닌 신분의 문제로 보고 있다. 현대미술은 콘셉트를 누가 정했고, 누구 브랜드로 보느냐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마티스는 백내장이 와도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했다. 그림 대작이 미술계 일부 작업임에도 쉽게 ‘관행’이란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단, “이는 미술계에서 토론으로 이론적 접근을 해야 했다. 조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과잉 대처였다”고 덧붙였다.

무죄 확정 이후 조영남씨는 통화에서 “그동안 내가 이 일로 마음고생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더 열심히, 본격적으로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5년 동안 다퉜단 말이야?’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판결은 앞으로 더 잘 그리라고 사회가 내게 내린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조수를 쓰겠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조수를 써야 할 정도로 바쁘고 인기 있는 화가가 되고 싶다. 곧 전시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다음주 초 두 번째 미술책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을 낸다. 출판사 측은 “조영남은 그림 대작 논란이 시작된 4년 전부터 집필에 몰두해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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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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