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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변신 ‘나는 자연인이다’ 성우 “다들 저음 느끼하다 했지만…”

중앙일보

입력

가수에 도전한 성우 정형석. 나직한 중저음의 매력이 노래로도 이어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에 도전한 성우 정형석. 나직한 중저음의 매력이 노래로도 이어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맛있어요? 어때요? 나도 줘요.” MBN 시사교양 ‘나는 자연인이다’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성우 정형석(46)의 내레이션을 따라 해보지 않았을까. 산속에 사는 자연인이 제철 보양식을 꺼내놓을 때면 깜짝 놀라다가도 어느새 홀린 듯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빠져드는 장면에서 말이다. 벌써 9년째 자연인 관찰기를 읊고 있는 그는 “처음엔 너무 야생이어서 이거 쉽지 않겠다, 방송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며 “중장년층의 로망이라고 하지만 의외로 젊은 팬들도 많다”고 했다.

‘나는 자연인이다’ 베테랑 내레이터 정형석 #‘사랑 그대로의 사랑’로 가수 도전장 내밀어 #“연극 배우로 데뷔 22년만에 오랜 꿈 이뤄”

지난 19일 발표한 첫 싱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자연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1993년 푸른하늘 유영석이 부른 원곡은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이 편곡한 빈티지한 재즈 사운드와 만나 빛을 발한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당장에라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김정호 원곡의 ‘하얀 나비’(1983) 역시 신윤철의 기타 연주와 함께 모던록으로 탈바꿈했다. 학창시절엔 또래 친구들에게 “느끼하다” “징그럽다”며 타박받기 일쑤였지만, 나직한 중저음이 곧 차별화 포인트가 된 셈이다.

“야생 가득 ‘자연인’ 이렇게 오래할 줄 몰라”

지난 19일 발매한 정형석 디지털 싱글 ‘사랑 그대로의 사랑’ 재킷. [사진 핏어팻]

지난 19일 발매한 정형석 디지털 싱글 ‘사랑 그대로의 사랑’ 재킷. [사진 핏어팻]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1998년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했던 그는 “사실 어릴 적부터 가수를 꿈꿨다”고 고백했다. 중창부와 밴드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보컬을 노렸지만, 너무 저음이라 포기했었다고. 하지만 EBS 라디오 ‘책처럼 음악처럼’(2015~2017) 진행 당시 재즈평론가 남무성을 만나면서 가슴 한쪽에 묻어뒀던 꿈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은하ㆍ서영은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2010)를 연출한 남무성은 정형석의 목소리에서 “아늑하면서도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첫 도전으로 리메이크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음악이 있잖아요. 그래서 군대 있을 때 즐겨 듣던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나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하얀 나비’ 등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곡을 먼저 꺼내봤죠.” 여기에 장기호 원곡의 ‘비오는 날엔’(2007) 등 다른 리메이크곡과 함께 신곡 ‘셀 수 없는 밤’(가제) 등을 계절마다 2~3곡씩 공개해 연말쯤 한 장의 앨범으로 묶어서 발표할 계획이다. 그는 “많이 돌아온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사람을 만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지난해 ‘쳤다하면 홈런 4번 타자’로 ‘복면가왕’에 출연한 모습. [사진 MBC]

지난해 ‘쳤다하면 홈런 4번 타자’로 ‘복면가왕’에 출연한 모습. [사진 MBC]

2015년 영화 ‘약장수’에 출연한 모습. [사진 대명문화공장]

2015년 영화 ‘약장수’에 출연한 모습. [사진 대명문화공장]

지금이야 목소리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스타 성우가 됐지만 “2006~2009년 KBS 성우 전속 계약이 끝나고 일이 없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1년 반 동안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고.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누구를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2010년 KBS2 ‘감성다큐 미지수’ PD님이 찾아주지 않았다면 광고는커녕 성우로서 저는 없었을 거예요.” 당시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로 주목받으면서 광고계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사람이 미래다’(두산) ‘최고가 되고 싶은가’(질레트) 등 지난 10년간 목소리 출연한 광고만 수백편에 달한다.

“광고 수백편? 일 없어서 1년 반 쉬기도”

사실 그가 성우가 된 것도 ‘귀인’ 덕분이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뮤지컬 ‘난타’를 함께 했던 배우 김원해가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성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한 것. “선배가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되게 고마웠어요. ‘난타’를 하면서 미국 브로드웨이도 가고 좋은 일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해져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류승룡 선배부터 장혁진 선배까지 다들 잘돼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영화 ‘약장수’(2015)를 시작으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등 틈틈이 연기도 병행하고 있는 그는 “작은 역이지만 오디션을 보고 하나씩 이뤄나갈 때마다 설렌다. 여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에 고정 출연 중인 성우 정형석-박지윤 부부. [사진 SBS]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에 고정 출연 중인 성우 정형석-박지윤 부부. [사진 SBS]

KBS 성우 선후배로 만난 부인 박지윤(42)은 ‘선의의 경쟁자’다. 성신여대 성악과 출신으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 ‘겨울왕국 2’(2019) 더빙판에서 안나 목소리를 맡아 노래 실력을 뽐냈다. “시사회에서 극장 가득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듣는데 너무 멋지더라고요. 감동적이고. 평소에는 칭찬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그 날만큼은 계속 칭찬을 쏟아냈죠. 서로 잘되면 박수쳐 주고 아니다 싶으면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거든요.” 그는 “아무래도 성우도 마이크 앞에서 미세한 감정 연기를 하다 보니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다”며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배우 혹은 가수로서도 대표작을 만날 수 있지 않겠냐”며 미소를 보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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