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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이고 노골적인 러브레터…손열음식 슈만이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23ㆍ24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었다. [사진 문혁훈, 크레디아]

23ㆍ24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었다. [사진 문혁훈, 크레디아]

격정적인 러브 스토리였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슈만은 달떠있었다.

손열음은 이날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 26~29세에 작곡한 네 작품을 연주했다. 슈만은 평생을 함께한 여인 클라라 비크를 18세에 만났고, 25세 즈음에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클라라 아버지의 반대로 둘은 5년여에 걸쳐 법정 싸움을 비롯한 어려움을 겪었다. 손열음은 바로 이 시절의 작품들인 '아라베스크' '어린이 정경' '판타지'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선택했다.

이날 연주는 본인의 음반 녹음보다도 격정적이었다. 슈만이 클라라와 멀리 떨어져 있던 시기에 작곡한 ‘판타지’를 손열음은 온전히 러브 레터로 이해하고 연주했다. 손열음이 이 작품을 녹음한 것은 3년 전. 당시에도 그는 이 곡을 “밤하늘의 해와 달부터,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까지 온통 그녀였던 슈만의 은밀한 편지”라고 소개했다. 음반을 위한 연주에서 그는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판타지’(환상곡)와 형식을 갖춘 ‘소나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해석했다. 하지만 23일 연주에서는 환상곡에 보다 가까워졌다. 1악장 첫 주제부터 격렬한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냈고, 속도도 당겨서 잡았다.

마지막 곡이었던 ‘크라이슬레리아나’는 손열음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곡으로 꼽아온 작품이다. 빠른 곡과 느린 곡이 번갈아 나오는 이 작품에서 손열음은 속도의 차이를 더 강조하면서 스토리를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특히 두 번째 곡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멜로디가 갑작스러울 정도로 불쑥 튀어나오도록 강하게 연주했고, 슈만 특유의 선율들도 굵은 선으로 강조했다.

슈만이 내면의 이중적인 자아로 평생을 고통받았고, 작품들에 이런 이중성이 표현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손열음은 슈만의 작품들을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서 작곡가의 정신적인 황폐함과 불안함을 표현했다. 그 결과 이날 연주된 슈만의 작품들은 좀 더 노골적인 연애편지로 전달됐다.

23ㆍ24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었다. [사진 문혁훈, 크레디아]

23ㆍ24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었다. [사진 문혁훈, 크레디아]

본래 손열음의 슈만 공연은 지난달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한 달 미뤄져 이날 열렸다. 또 관객의 한 칸씩 띄어 앉기를 지키면서 두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 슈만을 모두 연주한 손열음은 쇼팽ㆍ리스트ㆍ브람스를 앙코르로 들려줬다. 쇼팽은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리스트는 ‘판타지’를 헌정 받은 동료 작곡가였고 브람스는 슈만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이자 제자였다.

이처럼 앙코르까지 모두 슈만이 이야기로 공연을 마친 손열음은 마이크를 잡고 코로나19와 관련한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했다. “우리 모두 만나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우리가 강해졌기에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많은 위로 받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이후 4년 만이었던 손열음의 국내 독주회는 24일에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손열음의 슈만은 다음 달 10일 대전, 10월 부산·울산에서도 이어진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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