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어떻게 일군 대한민국인데…

중앙일보

입력 2020.06.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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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한반도가 다시 먹구름에 휩싸였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파탄 나며 북한이 남한에 대한 도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철면피” “뻔뻔스럽다” 등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신의를 배신한 것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고 대남확성기를 다시 설치하며 삐라(대남 전단)를 살포하려 한다.

북한, 핵 내세워 한국을 업신여겨
인내하라는 현 정부 대응에 실망
동맹 강화해 북핵 위협 대응해야

이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이나 9·19 군사합의(2018년 9월 19일)의 정면 위반이다. 유엔 제재와 코로나19 사태로 휘청거리는 북한 경제에 대한 책임을 남한과 미국에 뒤집어씌우려는 의도도 보인다. 외부와의 갈등을 고조시켜 북한 내부를 결집하려는 계산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인내하며 북·미와 대화로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이 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남한을 겁박하는 데 대통령의 처방은 “인내”다. 한반도 현실을 외면한 채 신기루 같은 남북 협력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국민은 그동안 북한의 갖은 막말과 패악을 참아왔다. 북한이 언젠가는 개혁·개방으로 돌아서 남북한이 공동 번영하는 한반도를 희망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경제 발전보다는 체제 유지를 우선하며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핵을 포기하면 북한은 세계 최빈국의 삼류 국가로 전락하고 김씨 세습 왕조가 온전하기 힘들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끝났다”고 말했다.

서소문포럼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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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신이 핵을 보유한 ‘전략 국가’라며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남한을 업신여기고 대화 상대로도 여기지 않는다. 핵 보유로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북한이 승리했다고 본다. 그러면서 북한의 대화 상대는 핵보유국인 미국이나 중국이고, 남한은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한 수 아래 국가로 여긴다. 실패 국가 북한의 김정은 정권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해도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에 목매며 북한을 기고만장하게 한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패배했나. 절대 그렇지 않다. 주민 먹거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철권통치로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을 남한과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고, K방역은 세계의 모범 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에 진입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한국의 성취는 자랑할만하다. 70년 전 북한 침공에 맞서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전쟁 이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한·미 동맹, 박정희 대통령이 지휘한 경제 발전,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화해 노선 등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대통령 등의 성과를 폄훼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공로자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으로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해 ‘공이 70, 과가 30’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들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일부 과오가 있었다 해서 공적마저 부정하는 건 한국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는 편협한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계승하는 한편 국민 생존을 위협하는 북핵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절대무기’ 핵은 핵으로 막아야 한다. 남한이 재래식 전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 해도 군사적으로 핵보유국 북한과 대등해질 수 없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이 핵 개발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간 미국·중국 등 강대국들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결국 미국의 핵우산을 더욱 확실히 보장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 북한이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지금 북한이 한국을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미국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는 한국은 북한에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의 위대한 성취를 계승·발전시키고 북핵 위협 앞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대통령의 최우선 의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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