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발생하는 실업과 자영업자 매출 감소로 파산 위기에 내몰릴 가계가 늘어날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왔다. 1년도 못 버티고 파산하는 가계가 최대 76만 가구에 이를 수 있고, 기업의 절반이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가계·기업 빚, 첫 ‘GDP의 2배’ 넘어 #적자가구들이 진 빚 111조원 규모 #기업, 자금 쌓으려 대출 늘렸지만 #절반은 벌어서 이자도 못 낼 판
한국은행은 24일 이런 내용의 ‘2020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가계와 기업이 진 빚이 역대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섰다. 지난 3월 말 기준 명목 GDP 대비 민간(가계·기업) 신용(대출·채권 등) 비율은 201.1%로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4.1%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0년 이후 분기별 최대 증가 폭이다.
이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신용공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민좌홍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가계의 대출이 증가했고, 기업의 자금확보 등으로 민간신용이 큰 폭 확대됐다”고 말했다. 대규모 자금 공급이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다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늘어난 대출이 금융시스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실제로 이날 보고서엔 경기 충격에 따라 가계부문의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담겼다. 임금근로자의 실직 및 자영업 매출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경우 버틸 수 있는 가계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분석한 결과다. 이 분석은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전체 가구(1992만 가구) 중 금융부채 보유 가구(1145만 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이중 벌이보다 씀씀이가 큰 경우를 ‘적자 가구’로 보고, 이들이 저축이나 펀드·보험 등 금융자산과 기타소득(재산·이전소득 등)으로 적자를 메운다고 가정했다. 누적 적자액이 금융자산 등 재원을 초과해 유동성 부족(추가로 대출을 받지 않으면 쓸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감내기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 임금근로 가구 중 감내기간이 1년 미만인 적자 가구가 45만8000가구인 것으로 추정됐다. 금융부채를 보유한 전체 임금근로 가구 중 5.8%에 해당한다. 자영업 가구 가운데서는 30만1000가구가 매출 충격으로 1년을 못 버티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쉽게 말해 가계가 저축이나 펀드·보험 등 금융자산과 재산을 다 털어도 1년이 안 돼 유동성 부족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 적자가구의 금융부채는 임금근로 가구의 경우 52조5000억원, 자영업 가구가 59조1000억원 등 111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은은 또 코로나 충격이 내수는 2분기, 해외는 3분기까지 지속하는 기본 시나리오(S1)와 충격이 연중 내내 지속하는 심각 시나리오(S2)로 구분해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분석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 즉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상태에 이르는 기업 비중은 2019년 32.9%에서 S1일 때 47.7%, S2 50.5%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경우 이자보상배율이 2019년 4.3배로 중소기업(2.3배)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코로나19 충격 이후에는 중소기업(S1 1.2배, S2 0.9배)과 비슷한 수준(S1 1.7배, S2 1.1배)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 국장은 “금융시스템은 정부 정책으로 대체로 안정된 흐름이지만,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지속할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