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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신입 “실적 압박에 퇴사 고민” 고참 “워라밸·복지 장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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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020 대한민국 은행원 리포트 

평균 연봉 9600만원에 아이 한명에 2년 육아 휴직을 보장하는 직장. 예나 지금이나 취업준비생에게 은행은 최고 직장이다. 하지만 은행원들은 “점점 팍팍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원들이 말하는 은행원은 어떤 직업일까. 4대 시중은행에서 근무 중인 직원 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3년 차 행원, 7년 차 대리, 13년 차 차장부터 20년 차 이상 부장까지 다양한 직급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요청에 따라 가명의 두 인물을 내세워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4대 은행 직원 심층 인터뷰 #지점 근무 강조, 전문성 못키워 #눈빛 가지고 시비거는 고객도 #핵심 업무 집중하며 은행도 변화 #의사 결정도 과거에 비해 신속

5년 차 김정민(가명) 대리

은행원 라이프 ‘말말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은행원 라이프 ‘말말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은행 디지털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막상 입행해보니 은행은 제너럴리스트 위주예요. 디지털 인재든 뭐든, 지점 근무 경험은 무조건 필요하다는 식이죠. 영업점에선 실적 압박에 시달려요. 1년 차 때 지점장님이 “신입은 어차피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 신용카드 100장씩 가입 받아오라”고 했을 때 퇴사하고 싶더라고요. 갑질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눈빛이 싸가지가 없다”며 컴플레인 건 고객도 있었어요. 결국 은행원은 서비스직이거든요.

얼마 전 오픈뱅킹이 생겼어요. 지점마다 할당량이 떨어져요. 그래서 할머니·할아버지가 오시면 핸드폰에 앱을 깔아드려요. 종이에 계좌 번호 써서 이체하시는 분들한테 오픈뱅킹을 설치해드린다는 거예요. 이걸 100만개 깔았다고 한들 디지털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나요?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무리하게 금융상품을 파는 것은 피하고 있어요. 예전엔 10개 판매를 목표치로 주면서 13개 따오길 기대했다면 이젠 7개만 해도 욕먹지는 않는 분위기랄까요.

예전과 달리 지금은 6시가 되면 컴퓨터가 셧다운 돼요. 주 52시간 근무가 보장되고, 월급·안정성·복지 다 갖춘 회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직업이란 건 맞아요. 하지만 이직이나 전직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요. 은행원으로 일해서 너무 행복하다는 사람은 제 주변엔 없어요. 적어도 또래 중에는요.

20년 차 이광식(가명) 부장

은행원이 사라질 거라고요? 단순 업무가 사라지는 건 분명해요. 이제 자동화기기(ATM)로 통장 발급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덕분에 은행원들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수십억대 자산가들이 금융 상품을 살 때 비대면을 선호할까요? 수백억을 빌려주는 은행원이 공장 실사 한 번 안 가고 대출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 청약 몇 개, 펀드 몇 개 가입시켜야 한다는 숫자에만 급급하면 결국 은행에도 고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은행원이 되는 겁니다. 은행원들 실적 압박 심하다곤 하지만 실적 못 채웠다고 잘리나요?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니거든요.

시간 외 근무가 발생할 때 확실한 금전 보상을 주는 것. 이게 워라밸 아닌가요? 인사팀에서 복지 정책을 검토할 때 대기업 정책을 참고하거든요. 다 뒤져봐도 금융권보다 복지 좋은 곳 많지 않습니다. 증권사 가면 성과급 많이 받는다고요? 반대로 성과가 없을 땐 죽 쑨다는 얘기잖아요.

시중은행도 생각만큼 답답한 곳은 아니에요. 예전보다 의사 결정 과정이 많이 슬림해졌고요, 빅데이터니 머신러닝이니 하는 부서가 얼마나 많이 생겼나요. 외부 채용도 늘어 공채 위주 문화도 바뀌겠죠.

영업점에서 근무하면서 소액이라도 고객 자산 관리에 도움을 드렸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는 은행원들이 많거든요. 그런 일이 적성이 맞는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어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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