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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은 동등한 한미 동맹 원한다" 조세영 외교차관 작심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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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 [뉴스1]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 [뉴스1]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24일 “한국민들은 동등한 파트너로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기대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했다.

24일 CSIS·KF 공동 주관 '한·미 전략포럼'

조 차관은 6ㆍ25 한국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이 날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공동 주최한 ‘제5차 한·미 전략포럼’ 기조연설에서 “균형 있는 동맹”을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조 차관은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주요7개국(G7)의 정식멤버로 한국을 초청한 점을 거론하고 “지난 70년 동안 한·미동맹도 시대와 함께 진화해 왔다”며 “한국인들 사이에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미 동맹의) 진정한 인식과 평가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한·미 동맹의 재정립 또는 재생(renew or rejuvenate)” 발언을 상기시키며 “동맹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해 11월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미측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설명하며 “1950년대 이후 한·미동맹의 재생과 재정립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기여분을 더 늘리라는 취지였다.

조 차관은 이에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따라 지난 30년간 주한미군을 지원해왔으며, 재정적인 기여를 늘려왔다”고 했다. “지난해 10차 SMA 액수인 9억 달러(실제 1조 389억원)는 전년도에 비해 8.2% 늘어난 것으로, 그해 경제성장률의 네 배를 넘어서는 인상 폭”이라며 “한국은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으로 2017년부터 평균 7.5%씩 국방 예산을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2.6%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조 차관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미국의 어떤 주요 동맹국도 이보다 많지 않다”고도 강조했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 차관이 ‘동맹 간 균형’을 강조하며 한국의 기여를 일일이 설명한 건 미측의 강한 방위비 인상 압박에 '작심 발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ㆍ미는 11차 SMA를 타결하지 못하고 6개월째 협상 공백 상태에 빠져 있다. 한국이 10차에 비해 13% 오른 인상 폭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3억 달러(약 1조 5000억원)를 고집하며 강대강 대치 국면에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발간을 계기로 재차 논란이 되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비 인상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매년 50억 달러를 써서 한국을 지켜주고 있다”며 방위비와 주한미군의 주둔을 연계시켰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은 23일(현지시간) 발간한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이를 연계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AP=뉴시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은 23일(현지시간) 발간한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이를 연계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AP=뉴시스]

조 차관의 작심 발언은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수 있다. 조 차관은 “현재 두 나라는 어려운 협상을 하고 있지만, ‘4월의 소나기는 5월의 꽃을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전작권 반환, 동등한 동맹 의미”…미사일지침 개정도 시사 

조 차관은 또 “전시작전권의 조기 전환도 한국인들이 동맹한 파트너로서 미국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여론은 한국이 스스로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인식한다”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촉구하는 발언이다.

미 해군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가 지난 2017년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모습. [미 해군 제5항모강습단 제공=연합뉴스]

미 해군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가 지난 2017년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모습. [미 해군 제5항모강습단 제공=연합뉴스]

조 차관은 이어 “수십 년 전 한국에 부과된 우주와 위성 개발의 오랜 제한을 해제하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주와 위성 개발 제한의 제거’는 한ㆍ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 또는 폐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미는 2017년 한차례 미사일지침을 개정해 한국의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앴다. 이후에도 물밑에서 미사일 지침 개정 협의를 진행해 왔다. 핵심은 한국이 독자적인 위성 감시능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고체 연료 추진체 개발 제한을 푸는 것이다. 그간 정부 고위급에서 극비리에 진행돼 온 미사일 지침 협상을 외교부 고위 당국자인 조 차관이 공개 언급한 것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유엔사 역할·지위도 동맹 발전을 위한 중요한 주제

조 차관은 “유엔사의 역할과 지위도 동맹 발전을 위한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사는 지난 70년간 정전협정 체제를 지켜왔다. 한국은 이에 매우 감사하며, 한국 국민은 이제 한국이 우리 스스로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있어 주목받아야 한다고 깨닫는다”며 “그 방법은 지금의 정전협정 상태를 종식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파문으로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종전 선언 필요성을 또 촉구한 셈이다.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 구축은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 온 목표였으나, 북한이 군사행동을 위협하다 김 위원장이 이를 ‘보류’한 당일 이런 발언이 나온 건 의미심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유정·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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