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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문화재 논란 '성락원' 명승 사유 바꿔 재지정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4월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성락원'의 공개 행사 당시 관계자들이 정원을 거닐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해 4월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성락원'의 공개 행사 당시 관계자들이 정원을 거닐고 있다. 변선구 기자

엉뚱한 역사적 근거로 국가문화재에 지정됐던 게 밝혀져 논란이 됐던 조선 시대 민가정원 ‘성락원’이 명승 지위에서 해제된다. 대신 새롭게 밝혀진 역사성 및 경관 가치를 감안해 새 명칭인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 추진한다.

조성자 철종 대 아닌 고종 대 내관으로 확인 #갑신정변 때 명성황후 피난처 활용 밝혀져 #'서울 성북동 별서'로 바꿔 명승 재지정키로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4일 문화재위원회(천연기념물분과)를 열고 명승 제35호 ‘성락원’에 제기된 지정 명칭 및 근거 오류를 받아들여 명승 지정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언론 보도로 지정 과정상의 문제점이 제기된 후 역사성 등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한 결과다.

앞서 문화재청은 2008년 성락원을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한 곳으로 전통 별서 정원 중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6~7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관련 문헌‧자료들을 전면 재조사한 결과 당초 조성자로 알려진 ‘이조판서 심상응’은 당대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고종 당시 내관이자 문인인 황윤명(1844~1916)이 조성자로 새롭게 밝혀졌다. 황윤명의 후손 안호영이 그의 시문을 모아 발간한 유고문집 『춘파유고』에 근거해서다. 또 오횡묵이란 관리가 일기ㆍ시문의 형식으로 남긴 『총쇄록』에도 황윤명이 조성한 별서정원을 1887년 방문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또 갑신정변(1884) 당시 명성황후가 황윤명의 별서를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기록(‘일편단충’의 김규복 발문,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라 이 별서가 1884년 이전에 조성된 것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일편단충(一片丹忠)은 명성황후가 갑신정변 후 김규복ㆍ황윤명 등에게 직접 써서 나눠준 것으로, 김규복이 붙인 발문에 따르면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 ‘태후, 왕비, 세자께서 이미 어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등의 기록이 있다.

지난해 4월 한국 전통정원 성락원 공개 행사 당시 참석자들이 영벽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해 4월 한국 전통정원 성락원 공개 행사 당시 참석자들이 영벽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문화재청은 “황윤명이 별서로 조성하기 이전에도 경승지(경치가 좋은 곳)로 널리 이용됐고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피난처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확인됐다”면서 “다양한 전통정원요소들의 조화로 경관적 가치 또한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고 현재 얼마 없는 조선 시대 민가정원으로서의 학술적 가치 등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10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새로운 역사적 근거를 확인했다 해도 “기존 문화재 지정을 해제하고 신규 지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의견을 낸 데 따라 관련 절차를 밟아왔다.

문화재청 변지현 서기관은 “지난 5월 관계전문가 7명의 현지조사에서도 경관성‧학술성 등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지정 재추진을 결정했다”면서 “다만 명칭은  『춘파유고』에 기술된 기록 등을 고려해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 속에 ‘서울 성북동 별서’로 결정됐다”고 알렸다. 관련 사항은 30일간 관보에 예고된 뒤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심의하게 된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이미 지정된 별서정원 22곳 전체에 대해서도 역사성 재검토 및 지정기준‧절차 관련 법령을 정비하기로 했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명승은 총 114건(성락원 제외)이다. 이 중 해남대둔산일원 등 2건이 관계 법령 재정비 과정에서 명승에서 해제됐다가 다시 번호를 부여받은 바 있다. ‘서울 성북동 별서’가 재지정되면 명승 117호가 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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