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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연말까지 이어지면…기업 절반, 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다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연말까지 지속할 경우 올해 국내 기업 50% 이상의 이자보상배율이 1에도 못 미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은 기업이 절반을 넘는다는 의미다. 재무적 충격에 따라 기업의 올해 유동성 부족 규모도 최대 54조4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보고서(2020년 6월)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채희권 국제총괄팀장, 정규일 부총재보, 민좌홍 금융안정국장, 이민규 안정분석팀장. 한국은행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보고서(2020년 6월)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채희권 국제총괄팀장, 정규일 부총재보, 민좌홍 금융안정국장, 이민규 안정분석팀장.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24일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다. 한은법은 연 2회 이상 거시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한 평가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은은 코로나19 확산이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자금 사정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했다. 국내 기업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매출 충격과 영업비용 조정, 부채 차환율 등 재무적 충격을 받는 상황을 가정했다. 영향이 내수는 2분기, 해외는 3분기까지 지속하는 기본 시나리오(S1)와 충격이 연중 내내 지속하는 심각 시나리오(S2)로 구분했다.

대기업 재무건전성 급속히 악화 

분석 결과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나빠졌다.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9년 4.8%에서 S1일 때 2.2%, S2일 때 1.6%로 악화했다. 기업규모별로는 대기업(2019년 4.8% → S1 2.0%, S2 1.4%)의 하락 폭이 중소기업(2019년 4.9% → S1 2.8%, S2 2.2%)보다 컸다. 이자보상배율도 2019년 3.7배에서 S1일 때 1.5배, S2일 때 1.1배로 큰 폭 하락했다.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이자를 갚을 능력을 보는 지표다. 이게 낮아진다는 건 수익성과 대출 상환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 즉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상태에 이르는 기업 비중도 2019년 32.9%에서 S1일 때 47.7%, S2 50.5%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한국은행

대기업의 경우 이자보상배율이 2019년 4.3배로 중소기업(2.3배)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코로나19 충격 이후에는 중소기업(S1 1.2배, S2 0.9배)과 비슷한 수준(S1 1.7배, S2 1.1배)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9개 취약업종(항공·숙박음식·여행·영화·해운·석유화학·자동차·여가서비스·종합소매)을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코로나19 충격 이후 모든 취약업종의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으로 하락했다. 특히 항공의 경우 채무상환능력이 2019년 -0.4배에서 S1일 때 -7.2배, S2일 때 -8.0배로 심각하게 나빠졌다.

금융시스템 복원력 양호…민간신용 확대는 우려

벌이가 시원찮으니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총유동자산이 연내 상환해야 할 부채보다 적은 기업으로 분석한 결과 올해 유동석 부족 규모는 S1 상황에서 30조9000억원, S2 상황에서 54조4000억원이었다. S1일 때는 내년 상반기 유동성 부족 규모가 8000억원으로 크게 줄지만, S2일 때는 5조1000억원으로 여파가 어느 정도 지속할 것으로 봤다.

한은은 이러한 실물 부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스템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안정지수(FSI)는 여전히 주의단계 임계치(8)를 큰 폭 상회하고 있지만 4월(22.3) 위기단계에 이르렀다가 이후 하락했다. 100에 가까울수록 불안정하다는 의미인 FSI는 크게 3단계로 구분되는데 8 미만은 ‘안정’, 8~22는 ‘주의단계’, 22보다 크면 ‘위기단계’다.

한국은행

한국은행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는 “유례없는 충격으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주요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으로 안정세를 보였다”며 “다만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 미·중 갈등 고조 등 경기 전망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경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대내외 충격을 감내하는 금융시스템의 복원력도 대체로 안정적이라고 봤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자본적정성, 유동성 비율이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규제기준을 큰 폭 상회한다. 외국인 자금 유출에도 외환보유액은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고, 대외지급능력도 양호하다는 분석이다.

가계의 지속적인 대출 수요 증가, 업황 부진에 따른 기업의 자금 확보 노력 등으로 민간신용이 큰 폭으로 확대된 건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면 저소득층과 취약 업종을 중심으로 신용·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민좌홍 금융안정국장은 “최근 정책당국의 신용 공급을 고려할 때 유동성 충격은 현재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경제활동 패턴, 글로벌 생산구조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여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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