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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국형 넷플릭스 5개" 외치는 정부에 냉소 나오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한국형 넷플릭스' 육성 방안 등을 담은 정부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안'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2일 정부는 2022년까지 약 3200억원을 써서 넷플릭스에 맞서는 K-미디어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이 예산의 혜택을 받을 현장에서는 "정부의 목표와 세부 실행 방안 모두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미디어 발전 방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 등 7개 부처가 합동으로 만들었다. 여러 부처가 힘을 합친 것은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GAFAN)에 우리 기업들이 체력을 키워 맞서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40차례 넘게 산·학·연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3200억원 예산으로 실현하겠다는 과제는 55개나 된다. 그 중에서 특히 강조하는 '핵심 과제'로는 ▶청년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 육성 ▶숏폼 등 신(新)유형 콘텐트 지원 ▶고품질 신(新)한류 방송 콘텐트 제작 지원 ▶콘텐트 제작·유통 고도화를 위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등이 있다. [과기부]

정부가 3200억원 예산으로 실현하겠다는 과제는 55개나 된다. 그 중에서 특히 강조하는 '핵심 과제'로는 ▶청년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 육성 ▶숏폼 등 신(新)유형 콘텐트 지원 ▶고품질 신(新)한류 방송 콘텐트 제작 지원 ▶콘텐트 제작·유통 고도화를 위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등이 있다. [과기부]

현상을 인지하고 문제 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목표를 보자. 2022년까지 국내 미디어 시장을 10조원 규모로 키우고, 콘텐트 수출액을 134억달러(약 16조2000억원), 글로벌 플랫폼 기업 5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과연 2~3년 내에 실현 가능한 일일까.

당장 올해 예산 3200억원으로 2022년까지 풀겠다는 과제는 55개나 된다. 그 중 '핵심 과제'로는 ▶청년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 육성 ▶숏폼 등 신(新)유형 콘텐트 지원 ▶고품질 신(新)한류 방송 콘텐트 제작 지원 ▶콘텐트 제작·유통 고도화를 위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등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것들은 대부분 민간 기업들이 승부를 봐야하는 사업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 해에만 미디어 콘텐트에 대해 150억달러(약 18조1300억원)를, 애플도 콘텐트 사업에 60억달러(약 7조2500억원)를 투자했다. 수십, 수백배씩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정부 예산으로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이재신 중앙대 교수(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는 "미디어 기업과 생태계가 성공하려면 콘텐트·인터페이스·서비스 등 모든 분야가 고루 잘 갖춰져야 한다"며 "정부가 1000억~2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세계적인 OTT(온라인 동영상서비스)가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OTT 수출 지원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한국 스타트업이 만든 OTT '왓챠플레이'를 탑재해 이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2일 발표한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으로 국내 OTT플랫폼을 스마트폰에 선탑재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과기부]

정부는 22일 발표한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으로 국내 OTT플랫폼을 스마트폰에 선탑재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과기부]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OTT 관계자는 "OTT 서비스의 덩치를 키우는 것만 고민한 정책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단순히 OTT를 널리 배포한다고 해서 해당 서비스가 성공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재밌는 콘텐트가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미디어 시장이 토목 공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산 OTT는 국내 시장에서도 고전 중이다. 지난 17일 닐슨코리아클릭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3사와 SK텔레콤이 만든 OTT '웨이브'는 지난 5월 월간 활성이용자(MAU) 수 346만명으로, 지난해 10월 출범 직후(379만명)보다 되레 떨어졌다. 출범 당시만 해도 넷플릭스 MAU(342만명)보다 앞섰지만, 5월 기준 넷플릭스(637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넷플릭스 하나와 경쟁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K-넷플릭스'를 여러개 만든다고 해서 승산이 있을까.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형' 사업은 용두사미인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2015년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며 K콘텐츠뱅크라는 콘텐트 판매·수출 플랫폼을 만들었다. 출범 당시 투입된 예산은 16억원이었다. 유튜브를 표방했지만 K콘텐츠뱅크가 1년간 판매한 콘텐트는 3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지식경제부는 2011년 '한국형 스티브 잡스'라 불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310억원을 썼다. 이런 정부발(發) 사업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이사는 "콘텐트·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기업이 중심이 돼야한다"며 "정부는 이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규제나 진흥책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방안 중에서 ▶방송·통신 M&A(인수·합병)시 절차 간소화 ▶OTT 영상물 자율등급제 ▶방송 요금·편성 규제 완화 등 시장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풀어주는 데만 집중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선영 산업기획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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