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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곳 잃은 소규모 공연들 “무관중 온라인 무대가 단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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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공연단 ‘로맨틱 용광로’ 배우들이 서울 강서구 연습실에서 아이디어 회의 중이다. 김상선 기자

공연단 ‘로맨틱 용광로’ 배우들이 서울 강서구 연습실에서 아이디어 회의 중이다. 김상선 기자

감염병은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통장은 텅 비었고, 올라야 할 무대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 이후 5개월. 무대를 잃은 예술인들은 사라진 공연장 대신, 온라인 무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로 공연 수입 10분의 1토막 #“코로나 때문에 꿈 포기 말자” 다짐 #“온라인 영상 제작은 아직 낯설어” #서울시 온라인 문화예술 지원 숨통

지난 18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수어(手語) 공연을 하는 핸드 스피크 정정윤(35) 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요즘 단원들에게 “코로나19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고 했다.

그가 공연 기획자로 나선 것은 10년 전 일이다. “춤추고 싶다”고 찾아온 10대들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농인(聾人). 수어(手語)로 랩을 하고, 들리지 않는 음악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겠다는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정씨는 이들과 10년을 동고동락했다. 무대 도전은 쉽지 않았다. 10대였던 단원들은 장애를 딛고 학교에 진학해 춤을 배웠다.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서 정씨는 2018년에 비로소 이들과 극단을 차렸다. ‘핸드 스피크’였다.

지난해부터는 수어 래퍼인 ‘지연’을 비롯해 수어 공연이 공연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칠전팔기 끝에 노력이 빛을 발하는가 싶었지만 한파가 닥쳤다. 코로나19였다. 예정됐던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조립공장…. 청각장애가 있는 단원들에겐 아르바이트 유지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코로나19 한파 맞은 공연업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한파 맞은 공연업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연예술통합 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올 1월 720개에 달하던 공연은 4월엔 155개로 줄어들었다. 업계 매출 역시 389억 원대에서 36억 원대로 10분의 1토막이 났다.

정 대표가 온라인 무대로 눈을 돌린 건 지난 4월의 일이다. 서울시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문화예술인 지원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여는 데 지원했다. 이 무대에 수어 공연 ‘사라지는 사람들’을 올렸다. 서울시 지원으로 올해 들어 처음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관객이 없는 온라인 무대였지만 단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정 대표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은 단비 같았다”고 했다. 1만8000여 회가 넘는 조회 수도 희망이 됐다. 그는 “공연은 없어지고 생계는 막막하지만, 온라인 무대 등을 통해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지하 연습실. 퍼포먼스그룹 ‘로맨틱 용광로’ 단원 3명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치매 어르신 등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일감이 사라졌다. 그나마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건 온라인 무대다. 로맨틱 용광로는 최근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온라인콘텐트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기회가 생겼지만, 고민도 그만큼 커졌다. 단원 유진영(배우) 씨는 “공연은 계속 취소되고, 배우들은 방치되고 있다. 온라인 공연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예술인들 역시 영상이 낯설다”고 토로했다.

박현지 대표는 “일주일에 서너번씩 아이디어 회의만 하는 상황”이라며 “올 10월 거리 공연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지만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로 무대를 지키던 사람들이 생업을 이유로 사라지고, 영상만이 예술인들에게 유일한 생계 대안이 될 것 같아 두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을 대상으로 긴급지원사업 신청을 받았다. 최대 2000만원, 총 500여 건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65억원에 달하는 예산도 배정했다. 신청 단체는 지원 규모의 10배인 4999곳에 달했다. 유연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코로나19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바로 문화예술인”이라며 “문화예술이 코로나19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 예술인에게 일거리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책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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