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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K팝 팬에게 당했다…텅텅 빈 유세장 보고 분노의 고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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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위치한 대선 유세장에서 청중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위치한 대선 유세장에서 청중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석달여 만에 대선 유세를 재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굴욕을 당했다. 그가 선택한 유세장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미국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하지만 지지자들의 연호로 가득해야 할 실내체육관은 3분의2 이상 비어 있었다.

NYT "단결력 강한 디지털 집단, 정치로 영역 확장"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클라호마주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압승을 거둔 곳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주 정부가 유세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승리의 상징과 같은 곳에 지지자들을 결집해 침체된 지지율을 끌어올려 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유세 현장에서 마주친 건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미 언론들은 유세장에 빈자리가 많았던 원인 중 하나로 10대들의 조직적 보이콧 움직임을 들었다. 온라인으로 유세장 티켓을 선점한 뒤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 운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를 주도한 젊은 층의 대표 격으로 꼽힌 건 K팝 팬들이다.

"트럼프 대통령, 텅 빈 좌석에 고함칠 정도로 분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위치한 대선 유세장에서 주먹 쥔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위치한 대선 유세장에서 주먹 쥔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텅 빈 유세장을 마주한 트럼프 대통령은 무대 뒤에서 참모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등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세도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감정을 고조시키며 연설을 하다가도 끝날 때쯤엔 힘이 빠진 듯 보였다"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한 10대의 정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뉴욕타임스(NYT)가 주목한 건 BTS와 블랙핑크 등 K팝 팬들이다.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문화에 능한, 젊고 진보적인 성향의 이들이 최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등 정치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팝 팬덤 문화를 연구하는 세다바우 세이지 인디애나 대학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털사 유세를 방해한 건 외국인 K팝 팬이 아닌 미국인 K팝 팬들"이라며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다루는데 능숙한, 젊고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K팝 팬들의 '전설적 조직력'…현실 정치서 모습 드러내"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클라호마주 털사 유세장의 모습. 유세장 위층 좌석이 거의 비었다. [AP=연합뉴스]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클라호마주 털사 유세장의 모습. 유세장 위층 좌석이 거의 비었다. [AP=연합뉴스]

NYT는 "K팝 팬들의 조직력은 과거부터 '전설적'이었다"며 차트 순위를 움직일 정도의 단결력을 보여왔다고 전했다. 실제 BTS 팬들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 순식간에 100만 달러(12억950만원)를 모금해 기부했다고 발표했다. 세이지는 이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디지털 단결력'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런 정치적 행동이 미국식 K팝 팬덤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K팝 메시지에 정치적인 내용은 없지만, BTS의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가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팬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면서,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이들의 표현력이 강해졌다는 해석이다. K팝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색인종 차별에도 거부감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생각을 공유한 팬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보다 티켓을 빨리 구입해 매진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것이 NYT의 분석이다. 순식간에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키는 이들의 '티케팅'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대규모 집회 좋아하는 트럼프…앞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열며 바람을 일으키는 재선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 데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가 계속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털사 유세장에 동행한 트럼프 대통령 캠프 내에서도 결국 확진자가 나왔다. 여기에 K팝 팬을 중심으로 한 10대 '디지털 전사'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까지 만나면서 대선 전략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가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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