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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도로는 붐비고, 열차·버스 승객은 줄고…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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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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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비교적 화창했던 지난 주말, 서울의 간선도로와 여러 고속도로가 몰려든 차량으로 교통정체를 빚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재확산할 기미를 보이면서 긴장감이 도는 상황이었지만 도로만 보면 코로나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고속도로 예년 수준 통행량 회복 #고속철은 전년의 60%대 그쳐 #감염 우려로 자가용 이용 더 늘듯 #“새로운 교통정책 패러다임 필요”

특히 고속도로 통행량은 4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최대 17.5%까지 줄었지만, 5월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6월 셋째 주의 평일 통행량은 예년보다 더 늘었다. 한국도로공사 신송철 차장은 “고속도로 통행량만 보면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여파로 KTX 승객은 한때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줄었다. [뉴시스]

코로나 여파로 KTX 승객은 한때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줄었다. [뉴시스]

반면 도로가 붐비던 지난 토요일(20일) 고속열차(KTX)의 승객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쳤다. 평소 같으면 심각한 좌석난을 겪어야 할 시기이지만 오히려 한산한 모습이었다. 코레일에 따르면 KTX와 일반열차 승객은 코로나 확산 이후 전년 대비 20~30% 수준까지 줄었으나 최근에는 60%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더는 늘지 않고 있다. 수서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 역시 지난해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코레일의 박진홍 언론홍보처장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승객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승객이 더 증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대표적 교통수단인 승용차와 열차의 상반된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 시대’의 교통 패러다임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교통흐름을 전망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선 많은 전문가가 승용차 이용은 늘고, 열차·버스 같은 대중교통 이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나들이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혼잡을 빚고 있다. [뉴스1]

나들이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혼잡을 빚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감염 위험성 때문이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불특정 다수가 함께 이용해야 하는 대중교통은 감염의 위험 때문에 가급적 피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열차는 물론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의 승객은 크게 줄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전반적인 통행 빈도는 줄어들면서 대중교통 대신 승용차 이용이 늘어날 것”이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차내 혼잡도가 낮은 고급서비스 수단을 선호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거리 통행에선 감염 위험 때문에 승용차를 지금보다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며 “도시 내부의 단거리 통행에선 대중교통 보다는 다른 사람과 접촉이 최소화되면서도 이동이 편리한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같은 소형 이동수단(PM, Personal Mobility)이 상당히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 감염 우려 탓에 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이 예년보다 많이 감소했다. [뉴시스]

코로나 감염 우려 탓에 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이 예년보다 많이 감소했다. [뉴시스]

문제는 이런 전망이 기존에 추진해온 교통정책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고, 버스·지하철·열차 같은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해왔다. 이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교통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혁 연세대 교수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향후 공유경제와 대중교통의 쇠락, 대중교통 고급화 요구, PM의 역할 증대를 예상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장거리와 단거리 통행을 나눠서 교통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단거리 교통은 직주근접(직장과 주거를 최대한 가깝게 하는 방안)과 저비용, 접근성 향상, 그리고 PM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 또 장거리 교통은 고비용이더라도 안전성이 담보되고, 빠른 이동수단이 제공될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진 위원은 “승용차 이용은 전염병 예방엔 강할 수 있지만 도시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 차량 중심인 도로 공간을 재구조화해 차와 자전거, PM, 보행자가 같이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버스 같은 대중교통도 민간에만 맡기기보다는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의 참여로 공영화하거나 민관합작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방역체계 강화 등 대중교통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차동득 대한교통학회 교통연구소장은 “정부가 무엇보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코로나로 인해 줄어든 대중교통의 수요를 다시 늘리는 것”이라며 “승객이 안심하게 탈 수 있도록 방역 대책을 대폭 강화하고, 대중교통의 혼잡도를 최대한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거리 이동 때 이용하는 열차나 고속버스의 좌석 배치를 승객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교통수단 이용을 둘러싼 양극화를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정훈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고소득층의 대중교통 기피 현상이 심화하면서 승용차를 더 많이 이용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불안감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타게 되는 등 사회 계급적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같은 통행 질의 양극화 해소도 큰 과제”라고 말한다.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제 극복될지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향후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미리 진단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또 다른 혼란을 막는 길이다. 우리가 늘 접하고 이용하는 교통 역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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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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