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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집주인이 가계약 깼다…돌려받게 될 돈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용호의 미션 파서블(1)

미성년자의 가짜 신분증을 믿고 술을 팔았는데 단속에 걸려 영업정지를 받게 된다면? 만취해 행선지도 말하지 못하는 승객을 지나친 택시기사가 승차거부로 경고를 받게 된다면? 알면 구제가능하지만 모르면 구제불능인 법률! 변호사가 실제 사례를 재구성해 법으로 구제 가능한 방안을 소개한다. 〈편집자〉

대한민국 국민이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여전히 꿈 같은 일이다. 2020년 5월 KB주택 가격동향 통계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9억 2000여만 원으로, 평생 일을 해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가격이다. 내 집 마련이 힘든 것은 비단 아파트값이 비싸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어렵게 성사되었던 계약이 없던 일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좋은 집을 찾아 가계약했는데,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계약을 해제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례를 통해 현명한 대처방안을 알아보자.

가계약 다음 날 집주인의 계약해제 요청

A씨는 가진 돈을 모두 모으고 대출도 이리저리 끌어와 아파트 구입자금을 마련했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여기저기 발품도 팔아가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기어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그런데 내 눈에만 그 집이 좋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단다. 공인중개사는 고민하지 말고 지금 바로 가계약금이라도 집주인 계좌로 송금하라고 재촉했고, A씨는 다급한 마음에 가계약금 500만 원을 집주인에게 송금했다.

송금한 날에는 집주인이 시간이 없다고 하여 며칠 뒤 다시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A씨는 벌써 내 집을 마련한 듯한 뿌듯한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A씨는 집주인 마음이 변해 가계약금을 돌려줄 테니 계약을 해제하자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가계약도 계약이 아닌가? 내 돈 500만 원은 어쩌지. A씨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매매목적물인 아파트 동, 호수도 특정됐고 매매대금, 잔금지급기일 등도 특정되는 등 가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다면 집주인이나 매수인 모두 가계약의 내용에 구속된다. [사진 pixabay]

매매목적물인 아파트 동, 호수도 특정됐고 매매대금, 잔금지급기일 등도 특정되는 등 가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다면 집주인이나 매수인 모두 가계약의 내용에 구속된다. [사진 pixabay]

통상 가계약은 다른 사람과의 계약 체결을 막을 목적으로 계약금(통상 매매가의 10% 정도)보다 훨씬 적은 가계약금을 집주인에게 송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통상 가계약 체결 시 가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는데, 가계약이 본계약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집주인의 변심 등으로 인해 계약이 무산된 경우에는 가계약금 반환과 관련해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가계약서에 잔금 지급 시기가 기재되지 않았고 후에 그 정식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 가계약서 작성 당시 매매계약의 중요 사항인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면, 매매계약은 성립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6. 11. 24. 선고 2005다39594 판결). ‘가계약서’란 명칭을 하고 있더라도 목적물, 매매대금 등 매매대금의 중요사항에 구체적 합의가 있다면 본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반대로 매매계약의 목적물은 특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매매대금 등에 구체적 의사의 합치가 없거나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 방법 등에 합의가 인정될 수 없다면 계약은 성립될 수 없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51650 판결). 가계약금만 송금되었을 뿐, 매매대금이나 잔금 지급기일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면 가계약은 애초에 효력이 없다는 말이다. 이 경우 가계약금은 아무런 법률상 원인 없이 집주인에게 지급된 것이므로 집주인은 매수인에게 가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

결국 매매목적물인 아파트 동, 호수도 특정됐고 매매대금, 잔금지급기일 등도 특정되는 등 가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다면 집주인이나 매수인 모두 가계약의 내용에 구속된다.

가계약도 계약

가계약 관련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식 계약이 아니라는 생각에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가계약도 계약이고, 한 번 성립된 계약은 그 내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사진 pixabay]

가계약 관련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식 계약이 아니라는 생각에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가계약도 계약이고, 한 번 성립된 계약은 그 내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사진 pixabay]

가계약도 계약의 일종인바, 가계약이 성립한 상태에서는 집주인이 가계약금만 돌려준다고 계약이 해제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가계약도 ‘계약’이니, 해약금의 법리에 따라 집주인이 가계약금의 배액만 돌려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매도인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지급받은 금액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안에서,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액은 ‘실제 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실제 사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집주인과 매수인이 계약금을 2,000만 원으로 약정하였는데 실제 지급된 가계약금은 500만 원이었다고 치자. 이 경우 집주인은 가계약금의 배액인 1,000만 원을 상환하는 것만으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집주인은 약정 계약금의 배액인 4,000만 원을 반환하여야 비로소 매수인에게 매매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해약금(약정 계약금의 배액)은 법원이 재량으로 감액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가계약금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된다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집주인이 돌려주어야 할 해약금(약정 계약금의 배액)을 법원이 감액할 가능성은 있다.

가계약 관련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계약은 정식 계약이 아니라는 생각에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급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가계약도 계약이고, 한 번 성립된 계약은 그 내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집을 보게 되어 마음이 급하더라도, 너무 깐깐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향후 복잡한 송사에 휘말리기 싫다면 가계약 관련된 간단한 약정서를 작성하거나 대화 녹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의 방법으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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