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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말고 햄버거 먹고파" 7주간 멈춘 이곳, 코로나도 멈췄다

중앙일보

입력

"2달 가까이 집밥만 먹으니 햄버거가 그립더라고요."

"머리카락이 눈을 가릴 무렵 미용실이 문 닫으면 불편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뉴질랜드 교민들의 얘기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8일(현지시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가 0명을 기록했다. 더 지켜보고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겠다"며 코로나 19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세계 최초였다. 21일 현재 확진자 5명이 늘었지만 모두 해외 입국 사례다. '코로나 청정국'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 교민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 4월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행한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대형마트. 입장 인원을 제한해 사람이 없다. 현지인 오모씨 제공

지난 4월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행한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대형마트. 입장 인원을 제한해 사람이 없다. 현지인 오모씨 제공

확진자 100명 넘자…즉각 봉쇄

뉴질랜드는 8일 자정을 기점으로 모든 물리적 거리두기 조치를 해제했다. 모든 공적·사적 모임을 허용하고, 상점 영업을 재개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바꿔말하면 그동안 '고강도 거리두기'를 해왔다는 얘기다. 뉴질랜드는 지난 3월 23일부터 7주간 강력한 봉쇄를 시행했다.

지난 3월 26일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고속도로. 같은달 23일부터 4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불가피한 사유 없는 이동을 모두 제한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26일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고속도로. 같은달 23일부터 4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불가피한 사유 없는 이동을 모두 제한했다. AFP=연합뉴스

해외 입국자 차단은 기본이고, 국내 이동도 제한했다. 병원·약국과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일부 마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학교도 문을 닫았고, 은행은 날을 지정해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영업했다고 한다. 대중교통은 불가피한 이동 사유가 있는 사람만 요금을 내지 않고 탈 수 있도록 했다.

직장도 폐쇄해 모든 일은 재택근무로 이뤄졌다. ‘워킹홀리데이(워홀)’ 비자로 5개월째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는 최우석(23)씨는 “7주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상점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밥은 무조건 집에서 먹어야 했고, 운동을 하고 싶어도 헬스장은커녕 조깅조차도 제한했다”고 말했다. 그는 2달가량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던 것을 가장 큰 불편 중 하나로 꼽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련한 방역 단계를 2단계로 내린 이후 이용할 수 있었던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지하철. 거리를 유지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권효정씨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련한 방역 단계를 2단계로 내린 이후 이용할 수 있었던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지하철. 거리를 유지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권효정씨 제공

최씨는 뉴질랜드에서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풀리면서 바로 일자리를 찾았다. 그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강력한 국가적 제재를 함으로써 사태 종식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가 지난 3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포한 건 확진자가 102명으로 늘어났을 때다. 이후 5월 14일부터 사업장 영업을 재개하는 등 거리두기를 다소 완화했다.

혼자 농구공 던졌다가 벌금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4년째 생활 중인 권효정(32)씨는 “3월 말부터 7주 동안은 사람이 없는 곳이라도 운동장에서 혼자 운동을 하거나 등산·낚시 등의 외부 활동이 금지됐다”며 “이를 어겼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의료시설이 많지 않아 코로나19 초기엔 걱정했지만, 확산을 차단하는 정책이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한 남성이 운동장에서 혼자 농구공을 던지다가 경찰에 적발돼 벌금을 무는 장면을 봤다는 교민도 있었다.

한국의 경우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유행이 퍼진 이후인 지난달 21일 인천시가 관내 모든 노래방에 2주간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클럽·감성주점 등 유흥시설에 대한 운영 자제를 권고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건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온 이후인 지난달 8일이다.

"기다려서 마트 입장…집밥만 먹어"

뉴질랜드 '셧 다운' 시행 당시 유일하게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대형마트에는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다만 마트도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해 30분 정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했다. 마트 앞에서는 최소 2m 간격을 둔 줄이 이어졌다.

지난 4월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행한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대형마트 앞.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모씨 제공

지난 4월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행한 뉴질랜드 웰링턴의 한 대형마트 앞.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모씨 제공

웰링턴에 거주하는 오모(30)씨는 “마트 내 인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구당 한 명만 장을 볼 수 있었다”며 “마트 안은 물론 인도에서도 사람이 지나갈 때 거리를 두고 멈춰 서는 등 거리두기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집밥만 먹다 보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피자,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였다”고 덧붙였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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