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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까지 1조원 쏟는데…현실은 '온실 속 자율주행차'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의 100번째 자율주행차 타보니  

지난 19일 경기도 케이시티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에 사람이 나타나자, 운전자 개입없이 자율주행차가 속도를 감속해 멈춰섰다. 염지현기자.

지난 19일 경기도 케이시티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에 사람이 나타나자, 운전자 개입없이 자율주행차가 속도를 감속해 멈춰섰다. 염지현기자.

지난 19일 경기도 화성의 케이시티(K-City). 자율주행차 실험을 위한 가상도시다. 차량이 녹색불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데 갑자기 50m 앞 횡단보도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차량은 속도를 줄이더니 부드럽게 정지선에 멈춰섰다.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장애물을 인식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이날 국토교통부로부터 임시자율주행 허가를 받은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자율주행차다. 국내 도로를 운행할 수 있는 100번째 자율주행차인 셈이다.

한국 100번째 자율주행차 타보니 #미국 수천대, 중국 바이두 300대 #실제 도로는 끼어들기, 킥보드 변수 #깐깐한 규제에 현장 경험 떨어져 #1조원은 인재와 기술 융합에 투자

외관은 제네시스 G80이다. 여기에 자동차 곳곳에 라이더와 카메라 등 자율주행 장치가 부착돼 몸값은 3억원 이상 더 비싸졌다. 특히 차량의 미러와 앞ㆍ뒤범퍼에 부착된 4개의 라이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레이저를 쏘아서 주변 지형과 사물을 감지해 곧바로 지도로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운전자 대신 자동차의 눈 역할을 한다. 커브 길에서도 핸들이 저절로 돌아간다. 신기하게도 차선을 한 번도 밟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1차선 하이패스 구간을 지나야 했다. 2차선으로 달리던 차량은 왼쪽 깜빡이를 켜더니, 자연스럽게 차선을 바꿨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안전연구원 남백 책임연구원은 “현재 (임시)자율주행허가는 테스트베드에서 성능요건이나 안전기준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며 “최근에 허가를 받은 차량이 초기보다 사물 식별이나 운전 성능이 좋아져 급제동이 줄고 운전이 부드러워진 게 특징”이라고 했다.

한국 이제 100대인데…. 중국 바이두의 3분 1수준

그렇다면 한국의 완전자율주행시대는 눈앞으로 다가온걸까. 정부는 2027년 운전자 개입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4)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술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7년간 1조974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상당수 자동차 전문가는 자율주행시대를 대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의 자율주행 기술력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 보다 3~4년 뒤처져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각종 규제에 묶여서 실증 데이터를 쌓을 기회가 적다”고 지적했다.

요즘 각국 자율주행차는 빅데이터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운전자 대신 자동차가 스스로 주변을 인지하고, 판단해 운전하려면 차량용 반도체와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상이 아닌 실제 도로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수천 대의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다. 각종 면제 제도를 통해 자동차의 안전기준을 적용받지 않고도 운행이 가능하다. 특히 구글의 자율주행개발업체 웨이모는 2009년부터 미국 25개 도시에서 테스트했다. 주행 누적 거리만 올해 초 3200만km를 넘어섰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정부의 임시운행허가를 받아야 한다. 2016년부터 자율주행허가를 받은 차량은 100대가 전부다.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 바이두가 보유한 자율주행차(약 300대)의 3분의 1수준이다.

웨이모가 공개한 재규어 I-페이스 기반 자율주행차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웨이모가 공개한 재규어 I-페이스 기반 자율주행차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도로는 킥보드ㆍ신호위반 등 변수 다양해  

지난 16일 울산테크노파크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출발한 자율주행 셔틀버스가 이예로를 주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까지 셔틀버스 성능 개선과 기술 안정성 확보를 위한 시범 운행을 한 뒤 내년 상반기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범운행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뉴스1

지난 16일 울산테크노파크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출발한 자율주행 셔틀버스가 이예로를 주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까지 셔틀버스 성능 개선과 기술 안정성 확보를 위한 시범 운행을 한 뒤 내년 상반기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범운행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뉴스1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규제가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에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필수 교수 역시 “실제 도로는 킥보드와 오토바이가 다니고, 횡단보도 아닌 곳에 보행자가 다니는 등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면서 “한국의 자율주행차는 깐깐한 규제에 묶여 쉽사리 테스트 베드 밖으로 나오지 못해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측은 "현재 임시운행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는 어린이 보호구역 등 일부를 제외한 전국 모든 도로에서 운행이 가능하며 여의도나 판교와 같은 복잡한 도심구간에서도 운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술적 특성에 의해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차량에 대해서는 규제특례를 적용해 임시 운행을 허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자율주행차 연구개발(R&D)에도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국토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찰청 등 4개 부처가 손잡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전체 사업 규모만 1조974억원에 이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율주행 관련 인력을 확보한 뒤 센서ㆍ라이더 등 제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율주행차 기술은 자동차는 물론 ITㆍ 정보통신ㆍ도로교통 등 모든 산업이 융합돼야 발전할 수 있다”며 “새로운 자율주행 생태계 마련을 위해 정부 부처 간의 적극적인 협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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