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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강제동원 피해 단체만 수십개 우후죽순···그래서 돈 못받아"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부산광역시 자택에서 만난 신영현(94) 할아버지의 방은 책과 서류 뭉치로 가득했다. 일제시대 강제동원과 역사적 책임을 증언하는 자료들이다. 신 할아버지는 19살 때 일본 시모노세키의 해저 탄광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고된 노동에 목숨을 걸고 탄광에서 도망친 뒤 일본의 한 비행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6년에는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도 참여했다.

[출구 없는 강제징용, 시한폭탄된 한·일관계 下]

신 할아버지는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을 비판하며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하는 현 상황도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안 풀리는 이유 중 하나가 "피해자 단체가 너무 많고,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설치됐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 접수가 시작되자 피해 당사자 및 유족들이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최승식 기자

지난 2005년 설치됐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 접수가 시작되자 피해 당사자 및 유족들이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최승식 기자

강제징용 당시가 기억나나. 
봄에 면에서 가자고 해서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에) 갔는데. 어딜 가는지도 몰랐는데, 밤에 갔는데 일본 하관(시모노세키)에 갔습니다. 탄광인데 탄을 바다 밑에서 캐. 바다 밑에 그때 마스크도 없고, 구멍을 뚫으면 먼지가 앞으로 오면서 얼굴이 목에 까지 새까맣게 됐다고. 월급은 줬겠는데 내 주머니에는 도망나왔을 때 돈이 없었어요. 어찌된지도 모르고. 내가 그때 도망 안오고 거기 있었으면, 그 때 탄광 밑에서 일하던 사람은 다 죽었어요.
원하는 해법이 있나.   
아베 총리가 먼저 사과하고, 그리고 저 위에(정부) 하고 의논해 가지고 내가 받지. (강제징용 피해자가) 수십만 인데, 내 혼자 그 돈 받아서 뭐하나(그런 생각이다).
과거사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은 아베 총리는 일본에 여권 들고 돈 벌러 간거지 한 사람도 강제로 데려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갔다 온 본인이 지금 있는데…. 할 말이 없어요. 한국에는 (강제징용)피해자 단체가 여러군데 우후죽순으로 있거든요. 정부에서는 (단체들끼리) 합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로가 독불 장군이 돼 있거든요. 일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개인 대 개인으로 상대하면 한국인이 말도 잘 하고 머리도 좋지만, 한국 사람들은 쪼가리로 나눠져 있고 일본은 하나로 뭉친다.’ 이렇게 말하거든. 지금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수십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서 서로 ‘날 줘라’ 하니, 정부에서 합하라 해도 안 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1+1안’, ‘문희상안’ 등 해법을 낸 적이 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우리나라에서 (해결)해준다고 하는 약속을 받았거든요. 문희상 (전) 국회의장하고 문재인 대통령하고 약속 했어요. 그런데 국회도 바뀌었단 말이에요. 문희상 의장이 이번에 물러나잖아요. 그럼 새 국회의장 들어오면 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할아버지는 인터뷰 말미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의혹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물어볼 것도 없다. 국회의원들은 왜 감싸고 도느냐”면서다.

☞최근 위안부ㆍ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전 사회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한ㆍ일 간 현안으로 꼽히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 보기 위해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일부나마 기록하고자 합니다.

인터뷰는 당사자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만, 피해자들은 고령이면서 법률ㆍ제도 전문가가 아니므로, 일부 용어상의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하고자 하시는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 지원단체의 연락도 기다립니다.

부산=김다영 기자, 영상=황수빈·송봉근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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