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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법원장 마치고 말단 판사로 정년…“돈 대신 보람 얻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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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호 ‘원로법관’ 조병현 전 서울고법원장을 만나다

“원고, 증거물 가져왔으면 보여주세요. 정말로 넘어집니까?”

고법원장 퇴임 뒤 부장판사 거쳐 #시법원 판사로 36년 경력 마무리 #“서민 억울한 사정 잘 들어주는 게 #대형 사건 판결 못지않게 중요해”

재판장의 주문에 원고가 들고 온 골프백(스탠드백)에 골프채를 주섬주섬 넣었다. 가방이 서서히 기울더니 옆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피고석에 앉았던 젊은이가 앞으로 나가 가방을 일으켜 세우고 골프채를 꺼내어 다시 넣고는 살며시 손을 뗐다. 이번에는 가방이 넘어지지 않았다. 자기 재판 차례를 기다리는 방청객 20여 명이 조마조마해 하는 눈빛으로 가방을 응시했다. “골프채를 한쪽에 몰아넣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피고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가방은 그대로 서 있었다.

재판장이 말했다. “원고는 환불을 원하고 피고는 제품에 하자가 없어서 응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하자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원고가 한때 피고에게 3만원만 돌려달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고와 피고 모두 답이 없었다. 18만원짜리 골프 가방은 어느덧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자존심 문제가 돼 있었다. 재판장이 다시 말했다. “원고, 3만원만 요구했던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요? 피고, 벌써 대전에서 두 차례 올라왔는데 교통비 써 가며 계속 법원에 올 생각인가요? 서로 조금씩 양보해 피고가 원고에게 3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잠시 머뭇거리던 원고와 피고가 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재판이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조병현 광명시법원 판사가 지난 11일 재판이 끝난 뒤 법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고법원장대전고법원장·서울고법원장 등을 역임한 ‘원로법관’인 그는 다음 달 말에 36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다. 조 판사는 현직 법관 중 최고참이다. 박종근 기자

조병현 광명시법원 판사가 지난 11일 재판이 끝난 뒤 법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고법원장대전고법원장·서울고법원장 등을 역임한 ‘원로법관’인 그는 다음 달 말에 36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다. 조 판사는 현직 법관 중 최고참이다. 박종근 기자

지난 11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광명시법원에서 펼쳐진 광경이다. 재판장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참 판사였다. 그의 앞에는 ‘원로법관 조병현’이라고 새긴 명패가 놓여 있었다. 판사로서의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부산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대구고법원장, 대전고법원장을 거쳐 서울고법원장을 지냈다. 다섯 차례나 법원장직을 맡았던 그가 수원지법도, 안산지원도 아닌 곳에 있었다.

광명시법원은 지방법원의 분원인 시군법원 중 하나다. 시군법원에는 판사가 한 명씩 있다. 즉결심판, 이혼 의사 확인, 소가(訴價) 3000만원 이하 민사사건(소액사건)을 맡는다. 일반 형사사건과 소가가 큰 민사사건은 지법이나 지원이 담당한다. 이날 광명시법원에서는 골프백 사건 외에 70만원짜리 휴대전화 요금 분쟁, 컴퓨터 모니터 한 개 값을 요구하는 소송 등의 재판이 열렸다.

조병현 판사는 2015년 2월 서울고법원장 임기를 마칠 때 60세였다. 대학 졸업 이듬해에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 11기)했고 승진도 빨라 대법원을 제외한 법원 내 최고위직의 임기까지 마쳤는데도 정년이 5년 이상 남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열거나 로펌으로 가 ‘전관’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 쉬면서 다른 고위 공직 진출 기회를 기다리는 것의 세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선배 고위 법관들이 걸어간 길이었다.

그런데 그는 일선 법관으로의 복귀를 결심했다. 자신이 책임자였던 서울고법의 부장판사 자리로 자원해 내려갔고, 다음 해에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됐다.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되밟아 하산한 셈이다.

2017년 고위 법관들을 재판 현장에 활용하는 ‘원로법관제’가 도입되자 그는 1호 원로법관이 돼 광명시법원을 맡았다. 1984년부터 36년간 법관 생활을 해 온, 현재 법원의 최고참 판사인 그는 다음 달 말에 정년퇴직한다.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5년 전에 왜 법원에 남기로 했습니까?
“생각이 많았는데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재판에 집중할 때가 가장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당시에 제가 중앙선거관리위원이었는데 임기가 4년가량 남아 있기도 했어요. 청문회까지 거쳐 맡은 자리라 그냥 함께 내려놓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회 없으십니까?
“솔직히 말해 ‘만약 변호사 활동을 했다면 돈을 제법 벌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은 하지요. 하지만 하루하루 보람차게 살았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습니다. 일선에서 재판한 지난 5년은 제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고등법원장까지 지낸 분이 소가 3000만원 이하의 재판을 하고 계십니다. 너무 소소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큰 사건 못지않게 이런 재판도 중요합니다. 서민들에게는 몇십·몇백만원이 큰돈입니다. 하소연할 데가 없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판사가 얘기만 잘 들어줘도 속이 풀려 재판이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호 원로법관이십니다. 원로법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이가 든 판사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라고 권유하면 원고와 피고가 대체로 잘 받아들입니다. 판사의 경륜을 인정해 주는 것이겠지요. 판사가 나이가 들면 소송 당사자들의 말을 경청할 여유가 생깁니다.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도 큰 이득 아닌가요?”
20대 국회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법조인들이 75세까지 법관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21대 국회에서 그런 법이 만들어지면 다시 법정으로 복귀할 생각도 있습니까?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안이 새로 발의되고 통과된다 해도 실제로 제도가 실현되는 데까지는 시일이 꽤 걸릴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시 법정에 선다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법원이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 등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떠나는 마당이라 말하기가 더욱 조심스럽습니다만, 검찰 수사가 과도하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모두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퇴임 뒤에는 어떤 일을?
“그동안의 경험을 공적인 서비스에 활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나서겠습니다. 사회에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 판사는 틈틈이 퇴임사를 쓰고 고치고 있다고 했다. ‘저는 36년간 내내 훌륭한 판사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퇴임하는 자리에서 ‘조병현은 판사답게 처신하고 재판다운 재판을 한 판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의 초고 한 대목이다. 재판에 집중할 때 가장 행복했고 보람을 느꼈다는 그를 보니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의 퇴임식은 다음 달 30일 광명시법원 법정에서 열린다.

한국 법원에 원로법관 12명이 있다

현재 한국 법원에는 총 열두 명의 ‘원로법관’이 있다. 모두 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지낸 전직 고위 법관들이다. 2017년 원로법관제가 도입되자 조병현 전 서울고법원장 등 네 명이 ‘말단’ 판사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열두 명은 판사가 딱 한 명만 있는 시군법원을 맡거나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소액사건(소송 가액 3000만원 이하)을 담당하고 있다. 사단장이 계급장 다 떼어내고 자원해 소대로 간 셈이다.

원로법관들

원로법관들

법원에는 법원장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법관들이 정년(65세) 이전에 퇴직해 변호사 활동을 하는 오래된 관행이 있었다. 후배 판사들의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이는 ‘전관예우’ 폐해 논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법원은 전관 문제를 줄이고 고참 법관들의 경륜을 널리 활용한다는 취지로 원로법관제를 마련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원로법관의 정년을 65세에서 75세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실제 법 개정 작업은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영국·일본 등에는 65세 이상의 판사들이 재판을 맡을 수 있게 하는 ‘시니어 판사’ 제도가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