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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과학]오늘은 하지…“자전축 경사 없으면 생물 살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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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 이미지. [사진 NASA]

지구의 자전 이미지. [사진 NASA]

지구에 생명이 가득한 것은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 덕분이다.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의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 일출. [뉴시스]

지구에 생명이 가득한 것은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 덕분이다.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의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 일출. [뉴시스]

오늘(21일)은 하지(夏至)입니다. 지구 북반구에서 연중 해가 가장 긴 날이죠. 서울 기준 오전 5시 11분에 해가 떴고, 오후 7시57분에 해가 집니다. 하루 24시간 중 14시간 46분 동안 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의 반대쪽, 남반구는 오늘 동지입니다. 호주 시드니는 오전 7시에 해가 떠서 오후 4시53분에 집니다.  낮시간이 서울보다 5시간 가까이 적은 9시간 54분에 불과합니다.

하지와 동지가 생기고, 계절이 바뀌는 건 지구의 자전 축이 기울어져(23.5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더운 건, 이때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을 향해 기울어져 있어 북반구의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단위 면적당 햇빛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언뜻 계절의 변화가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 차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다릅니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 형태라, 태양과 가까울 때도 있고 멀 때도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겨울인 1월에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고, 여름인 7월에 가장 멀어집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보다, 지구의 기울기가 기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2020년 하지와 외계생명 찾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행성의 기울기가 생물의 생존 조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지구처럼 생물이 살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아온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행성의 기울기는 큰 관심거리가 돼 왔습니다. 지구와 비슷한 기울기를 가진 행성만 생물이 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똑바로 회전하거나 위 아래로 도는 행성에서도 살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입니다. 참고로 행성의 기울기는 제각각입니다. 수성의 기울기는 0.03도에 불과하지만, 천왕성은 82.33도나 돼 사실상 위아래로 회전합니다.

푸른 지구. 지구가 생명으로 가득할 수 있는 데는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뿐 아니라, 23.5도로 기울어져있는 적당한 자전축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NASA]

푸른 지구. 지구가 생명으로 가득할 수 있는 데는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뿐 아니라, 23.5도로 기울어져있는 적당한 자전축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NASA]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레네 헬러 박사는 이런 행성의 기울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성이나 천왕성처럼 극단적인 기울기를 가진 행성에서는 생물이 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특히 수성처럼 기울기가 거의 없는 행성의 경우 햇볕이 거의 닿지 않는 극지방은 너무 차가워 이산화탄소가 우주로 모두 빨려 올라가버리면서 온실효과가 생기지 않고 액체상태의 물이 생겨날 수 없다고 합니다.

행성의 자전축이 천왕성처럼 누워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자전이 아닌, 공전에 의해서 생겨날 겁니다. 공전궤도 상에서 항성(해)을 보고있을 때는 항상 낮과 여름이라 쩔쩔 끓어오르다가,  항성의 반대쪽으로 바뀌면 밤과 겨울이 계속되면서 얼어붙을 겁니다.
헬러 박사는 생물이 살 수 있는 최적의 기울기를 10도에서 40도 사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는 23.5도로 중간쯤에 해당하죠.

물론 헬러 박사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 학자도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의 천문학자 로리 반스는 대기층이 두껍다면, 자전축의 기울기에 관계없이 항성으로부터 받은 열을 행성 내에 골고루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리딩대의 해양학자 데이비드 페레이라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천왕성처럼 극단적인 기울기를 가진 행성이라 할지라도 넓은 바다를 가지고 있을 때엔 역시 생물이 살 수 있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여름에 바다가 열을 흡수했다가 겨울에 내보내면서 행성 전체의 온도를 조절한다는 설명입니다.

회전력을 잃은 팽이처럼 비틀거리면서 기울기가 수시로 변하는 행성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화성의 현재 자전축 기울기는 25.19도이지만, 지난 수백만년 동안 10도에서 60도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이 경우 계절과 기후의 변덕이 심해 생물이 생존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지구는 운이 아주 좋은 행성입니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지구가 적당한 크기의 달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자전축의 기울기가 변하지 않고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달과 지구가 서로 당기는 힘에 의해 기울기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얘기지요.

우주에는 ‘골디락스 존’이라 불리는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habitable zone)이 있습니다.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 생명체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지대를 뜻합니다. 대개는 자체적으로 빛과 열을 가진 항성으로부터 적당한 거리 내에 있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 태양계의 경우 지구~태양 간 거리를 1로 볼 때 골디락스 존은 0.95~1.15 사이입니다. 태양계 밖 외계에 떠있는 수많은 항성들도 태양계처럼 행성들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 골디락스 존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항성과 행성간의 거리뿐 아니라, 행성의 자전축 기울기와 안정성 등이 모두 갖춰져야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지구는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입니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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