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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관 짜던 금강송이 하얗게 셌다…울진 떼죽음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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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가 고사하면서 잎이 전부 떨어지고 가지가 하얗게 변했다. 녹색연합 제공

금강소나무가 고사하면서 잎이 전부 떨어지고 가지가 하얗게 변했다. 녹색연합 제공

17일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국내 최대 금강송(金剛松)은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2015년 주민들의 청원으로 서면에서 금강송면으로 지명을 바꿨을 만큼 금강송은 이 지역의 자랑거리다.

왕피천탐방안내소를 지나 통고산에 오르자 수십 미터 높이의 붉은색 소나무들이 숲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리저리 휜 다른 소나무와 달리 금강송은 하늘로 곧게 뻗어 있었다.

“조선시대 때도 왕실에서 필요한 소나무들은 다 여기서 가져가 쓸 정도로 한반도에서 최고의 소나무가 밀집된 곳이죠. 숭례문처럼 국보급 문화재를 복원할 때도 금강송을 가져다 썼어요. 지금은 수억을 줘도 절대 구할 수 없어요.”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소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경북 울진 금강송면 금강송군락지에서 발견된 고사한 금강송들. 천권필 기자

경북 울진 금강송면 금강송군락지에서 발견된 고사한 금강송들. 천권필 기자

그를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솔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소나무 10여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껍질이 전부 벗겨진 채로 속살을 드러내는가 하면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진 나무도 있었다. 멀리 반대편 산도 울창한 숲 사이로 불에 탄 것처럼 앙상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서 위원은 “재작년부터 이렇게 20~30그루씩 군집 형태로 죽어 나가는 금강송들이 이 일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대부터 집단 고사…100살 금강송 뿌리째 뽑혀

경북 봉화군 비룡산에서 발견된 고사한 금강송. 녹색연합 제공

경북 봉화군 비룡산에서 발견된 고사한 금강송. 녹색연합 제공

금강송은 여느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게 자란다. 목재의 재질도 우수하다. 결이 곱고 단단해 굽거나 갈라지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다. 과거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만들 때 금강송이 사용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금강송은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봉화·청송까지 백두대간 줄기를 중심으로 자란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금강소나무 고사 현상은 201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처음에는 경북 울진에서 시작됐고, 2015년 이후부터는 봉화와 강원 삼척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현장 모니터링 결과, 잎이 붉게 타들어 가면서 떨어지고 줄기가 벗겨지면서 죽어가는 금강송들이 50곳 이상에서 관찰됐다. 100년 정도 된 아름드리 금강송이 뿌리째 뽑혀 죽은 모습도 확인됐다. 재작년부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보호구역인 울진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도 고사한 금강소나무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위성 사진으로 본 2016년과 2018년 울진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내 금강송 군락지의 모습. 고사한 나무들로 인해 가운데 지역이 하얗게 변했다.

위성 사진으로 본 2016년과 2018년 울진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내 금강송 군락지의 모습. 고사한 나무들로 인해 가운데 지역이 하얗게 변했다.

“반복된 기후변화 스트레스로 고사” 추정

금강송 고사 현상이 계속되면서 대구지방환경청 왕피천환경출장소와 울진국유림관리소 등은 지난해 금강송 집단고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합동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확실한 고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한때 '소나무계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고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고사목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소나무재선충병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가뭄과 겨울철 이상고온 등 반복된 기후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로 금강송이 고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온 건조한 날씨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부 지역에서는 소나무가 견딜 수 있는 생리·생태적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왕피천환경출장소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 지역에 허리까지 눈이 쌓였을 정도였지만 올겨울에만 해도 눈이 한 번밖에 내리지 않았을 정도로 기후가 변했다”며 “다행히 고사목 주변으로 피해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지는 않고 있어 계속 감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강소나무 고사 현상이 토종 침엽수인 소나무 쇠퇴의 시작 징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나무는 전체 산림면적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침엽수다.

특히, 금강소나무 고사가 소나무의 서식지 중 높은 고도에 해당하는 해발 600∼1000m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높은 고도에 사는 식물은 온도와 바람, 수분 등의 자연환경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위원은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고, 봄에는 바람이, 여름에는 태풍과 폭염이 강해지는 등 수만 년 동안 이곳에 살아왔던 소나무 유전자나 소나무들이 겪어 보지 못했던 기상현상들이 최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로 현재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 금강소나무의 보전과 관리 차원에서도 모니터링과 원인 규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울진=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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