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대북 확성기 재개’를 주장하고 나섰다. 태 의원은 지난 1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단계별 위협을 내놓는 북한에 대한 대응 카드로 확성기 재개 등 단계별 대응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이후 태 의원은 통합당 외교안보특위 회의에서도 “북한이 두려워하는 확성기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확성기 방송이 효과가 있다는 쪽은 북한 주민이나 북한군의 동요가 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북한이 아파하는 부분을 대응책으로 내세워야 협상 가능성도 커진다는 논리다. 반면 확성기 방송이 남북 충돌이나 긴장 상태를 초래한다는 진보 진영의 반론도 존재한다.
확성기 방송은 GOP(general outpostㆍ철책선 초소) 일대에서 고성능 스피커를 동원, 북한 정권을 비판하거나 한국 소식을 전하며 심리전을 펴는 것을 말한다. 야간 기준 북쪽으로 24㎞ 떨어진 지역까지 소리를 전할 수 있다.
1963년 5월 서해 휴전선 일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 이후 방송이 중단됐지만, 1980년 9월 북한이 대남방송을 재개하면서 우리 정부도 방송을 재개했다. 확성기가 다시 중단된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ㆍ15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남북장성급 군사회의에서 채택된 6ㆍ4 합의로 확성기 시설이 아예 철거됐다.
하지만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일부 확성기 설비를 다시 설치했다. 실제 방송을 하진 않았지만 확성기를 설치한 것만으로도 북한은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일 것”(인민군 총참모부)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확성기가 다시 가동된 건 박근혜 정부 시절 목함지뢰 폭발사건이 벌어지면서다. 2015년 8월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이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두 다리를 잃는 등 피해를 보자, 정부는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이 시기 확성기 방송은 북한 정권에 대한 비난 위주였던 과거 방송과 달랐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아이유 등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나 스포츠, 국제뉴스, 날씨 소식 등을 전했다.
북한은 무력으로 대응했다. 그해 8월 20일 북한은 서부전선 일대의 확성기 쪽으로 14.5㎜ 고사총을 발포했고, 잠시 뒤 76.2㎜ 직사화기도 여러 발 추가 발사했다. 국군 포병은 155㎜ 포탄을 수십발 쏘며 대응 사격했고, 경기도 연천 지역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없으면 확성기 방송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했다. 결국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당 비서가 참석하는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회담 결과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고’ ‘지뢰폭발로 한국 군인들이 부상 입은 것에 대해 북측이 유감을 표하며’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민간교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의 6개 합의를 8월 25일 도출했다.
멈춰있던 확성기는 합의 4개월여 만인 2016년 1월 8일 재가동됐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다. 당시 확성기의 첫 메시지는 “북녘 동포 여러분, 새해에는 금연하세요”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8년 4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결정하고, 그해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대북 확성기는 모두 해체됐다.
지난 16일 북한의 남북공동 연락 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확성기 재개론’이 다시 정치권에서 불붙었다. 앞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등 입법을 추진한 여당은 북한을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이지만, 일부 야당 의원 사이에선 확성기를 협상 카드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지낸 신원식 통합당 의원은 “확성기를 실제로 트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이지만, 조건부 확성기 재개 입장을 밝히기만 해도 북한에 압박을 주기 때문에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