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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결혼·자녀 체벌…달라진 세태 반영 못하는 60세 민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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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호 05면

21대 국회 재발의 ‘구하라법’

지난 1월 국회에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1월 국회에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제정된 지 60년이 넘은 우리나라 민법이 변화하는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본법이라는 이유로 개정 논의에 지나칠 만큼 신중해서다. 노종언 변호사는 “장남에게 차남이나 딸보다 더 많은 상속분을 주도록 한 법을 모든 자녀에게 똑같은 비율로 나눠주도록 바뀐 게 1990년대 들어서였다. 기본법이다 보니 개정하는 데 굉장히 보수적이고 시대 반영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본법 이유로 개정에 너무 신중 #유언·상속 상담 발길 꾸준히 늘어 #자녀 법정상속분 절반 유류분 주장 #배우자 상속분 줄어 노후 곤경도 #“자녀 출생신고 관련법도 손질을”

법이 만들어지던 당시 대가족 제도가 보편적이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황혼 이혼 및 재혼, 사실혼 관계,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전체 면접상담에서 유언·상속에 관한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까지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상담소는 “재혼을 앞둔 노년의 경우 자녀와의 갈등, 특히 상속 문제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들은 법률혼 대신 사실혼을 택하거나 증여 또는 유언으로 미리 자녀에게 재산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부모를 찾지 않은 자녀가 부모 사망 후 본인의 유류분(상속을 받은 사람이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일정한 상속인을 위하여 법률상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할 부분)을 청구하며 다른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자녀가 법정상속분의 절반을 유류분으로 주장할 수 있어 홀로 남게 된 부모는 사는 집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 2부장은 “평균 수명이 늘고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배우자 부양’의 개념도 등장했다. 경제생활을 함께하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남은 배우자에게 상속이 돌아가야 하지만, 자녀가 여러 명일 경우 배우자의 상속분이 줄어들면서 노후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류분 제도는 1977년 민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유언이나 증여를 통해 자녀 중 일부에게만 재산을 몰아주는 경우 나머지 상속인의 생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주로 아들에게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는 관습 때문에 딸들이 상속에서 겪는 차별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면서 당초 취지는 크게 퇴색되고 오히려 개인의 유언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유류분 반환 소송 건수는 2008년 295건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1511건을 기록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 문제도 시대가 바뀌면서 법적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나 창녕에서 의붓딸을 잔혹하게 학대한 사건 등 아동학대가 잇따르자 법무부는 민법에 명시된 ‘보호자의 아동 징계권’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어, 어떠한 경우에도 체벌이나 학대를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사회통념과 맞지 않은 조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한결같이 “훈육 차원에서 그랬다”고 주장하는 등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양소영 변호사는 “민법에서 자녀 징계권을 삭제한다는 것만으로 비상식적인 아동학대범죄가 사라진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훈육을 핑계로 학대가 이루어져 온 현실을 감안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서적·신체적 학대의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학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실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의 출생신고 관련 법도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미혼부의 자녀 출생신고를 무조건 허용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혼인외 출생자 신고는 모(母)가 해야 한다’는 조항을 ‘부(父) 또는 모가 해야 한다’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친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 미혼부가 출생신고하기 어려운 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어디까지 법으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의 저자 양지열 변호사는 “민법은 아동학대, 노인학대, 황혼 결혼 등 전반적인 사회 문제와 관련되는 만큼, 지금이라도 복잡해진 가족 형태에 맞게 전면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나윤·최은혜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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