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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이 실상 압도해도…예술 생산 관장하는 건 개인·주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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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호 22면

[미학 산책] 자연미·예술미·생활미: 동굴 밖 세계로

‘미학 산책’은 필자가 오랫동안 즐겨 보고 듣고 읽어온 여러 예술작품에 대한 사적이고 내밀하며 실존적인 사랑의 기록이다. 그것이 그 나름으로 절실하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독자들께도 어떤 메아리를 울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마그리트 명화 ‘이것은 파이프가…’ #그려진 이미지가 그 자체는 아냐 #비판적 대응 필요한 작품 부지기수 #메타비평으로 가상·껍질 벗길 것 #예술에 기대어 삶을 돌아봤으면

플라톤의 『국가』에는 유명한 동굴 우화가 나온다. 사람들은 “지하에 있는 동굴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은 “빛 쪽으로 열려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목과 다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 늘 같은 곳에 머물러 있고, 이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앞쪽만 쳐다본다.”

다시 써 보자. 하나의 지하동굴이 있고, 그 입구에서 빛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이 빛을 등진 채 ‘그저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마치 수감자처럼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팔다리는 묶여 있어서 다른 쪽을 볼 수 없다.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진리나 선이든, 벽에 비친 어슴푸레한 것들뿐이다. 동굴 입구를 바라볼 수도 없거니와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화가의 침대는 그림자의 그림자인 셈

일러스트 = 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 = 이정권 gaga@joongang.co.kr

플라톤의 동굴 우화는 학문의 인식활동이나 예술의 창작행위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진리탐구는 본질을 직접 보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굴 속으로 들어온 빛은 기껏해야 그 벽면에 남긴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동굴 안에서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듯이, 어둠에서 벗어나 그 밖의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예술행위에도 해당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침대에도 세 종류가 있다. 목수가 만든 침대와 이 침대를 그린 화가의 침대가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자연에 있는 어떤 원형적인 것 - ‘침대의 이데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신이 자연의 침대를 창조했다면, 목수는 현실의 침대를 만들었고, 화가는 이 침대를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화가의 침대는 원래의 실재로부터 세 번째로 자리한다.

그리하여 신의 침대가 원형이라고 한다면, 목수의 침대는 이 원형의 모방이고, 화가의 침대는 모방된 원형을 다시 모방한 것 - 모방의 모방이다. 목수의 침대가 원형에 대한 그림자라면, 화가의 침대는 그림자의 그림자다. 그림자란 가짜고 허상이다. 그러니 예술의 진실은 진실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실재(reality)는 그만큼 포착하기 어렵다.

우리의 논의를 미(美)로 국한시켜 보자. 아름다움에도 물론 여러 종류와 단계가 있다. 보이는 미와 보이지 않는 미, 감각적 미와 정신적 미가 있다. 그러나 간단히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생활미로 나눠 생각해 보자.

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한 바움가르텐 이래 칸트에 이르기까지 주로 언급된 주제는 자연미였다. 그 후 헤겔을 지나면서 자연미보다는 예술미에 더 주목한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이를테면 윌리엄 모리스의 수공업운동을 거치면서, 미학은 생활현실에 더 다가선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또 한 번 격변한다. 자연은 파괴되고, 예술의 존재가 의문시되면서부터다. 대상과 매체 사이, 예술과 기술 사이, 작품과 수용자 사이에서 엄청난 혼합과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과 예술의 관계도 급격하게 뒤흔들리면서 미의 위상도 새로운 정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생활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을 성찰할 때면 예술을 떠올려야 하고(그래서 예술미는 불가결하다), 예술이 묘사하는 사물의 원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그래서 자연미가 있다), 이런 미의 경험에서 오는 영향력을, 그것이 예술에서 오든 자연에서 오든, 우리는 나날의 일상으로 돌려야 한다.(그래서 예술이 갖는 생활세계적 의미를 성찰한다).

이때 예술의 경험은 예술작품에 국한된 경험을 뜻하고, 심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은 예술을 비롯하여 자연이나 현실에서의 경험도 포괄한다. 그래서 느끼고 생각하면서 ‘미를 심사하고 판단하는(審美的)’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모두 심미적 사건이 된다. 이때 예술작품은 인간과 그 현실을, 이것이 예술가에 의해 고안되고 형상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에 ‘좀 더 밀도 있게’ 표현한다. 그래서 작품에 표현된 인간과 현실과 세계는 그 시대의 가장 빛나는 전형(type·model)이 되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 원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 원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

아무리 인간이 기계화되고 기계가 인간화되며, 예술의 생산에서 가상이 실상을 압도하며, 미메시스 대신 시뮬라시옹(simulation)이 우선시된다고 해도, 그래서 예술장르의 변형은 물론 작품 개념마저 사라져 버리고, 그래서 마침내 가상현실을 넘어 증강현실까지 말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은 인간·개인·주체다. 아무리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변질된다고 해도 변함없이 요구되는 것은 주체의 책임 있는 태도이고, 그 비판적 개입이며 합리적 판단력이다.

우리는 예술의 기술적 매체적 측면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복제나 기계화도 ‘현실 안에서’ 일어난다. 또 아무리 자연이 파괴되고 예술의 생산조건이 위태롭다고 해도 자연미와 예술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염두에 두는 가운데 ‘예술경험의 이 생활세계적 파급력’을 다양하게 성찰해 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치 않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예술의 현대적 조건을 가장 간단한 형태로 보여 주는 사례는 무엇일까?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잘 알려진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가 떠오른다.

동굴 밖의 더 나은 세계로 나오길

마그리트는 흔히 있는 대상을 흔치 않는 맥락 속에서 묘사함으로써 기존의 감각을 뒤흔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그림도 그렇다. 그림 중앙에는 커다란 진갈색 파이프 외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쓰여 있다.

화가는 하나의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자신의 그림을 부정한다. 이 진술은 거짓이 아니다. 그려진 파이프가 파이프 자체가 아닌 것은, 마치 지도가 영토가 아닌 것과 같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리면서,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글자로 부정한다.(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반어적 표현이고, 비평에 대한 비평 - 메타비평이다. 사실 오늘날의 세계는 이렇게 ‘부정적·비판적으로’ 대응해야 할 작품의 목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해 가는 시대이기도 하다.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가상과 이미지, 거짓과 껍질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학 산책’을 세 가지 원칙 아래 쓰려 한다.

첫째, 나는 ‘사회’나 ‘국가’ 대신 ‘나의 경험’에서 쓰기 시작할 것이다. 예술의 여러 장르에 대한 나의 사소하고 내밀하며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경험이 그 어떤 사회역사적 집단적 대의명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가능한 한 ‘주장’하거나 ‘단언’하지 않으려 한다. ‘설교’나 ‘훈계’ 혹은 ‘확정’은 나의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절실한 느낌에 따라, 그 느낌의 다채로운 사연을 가능한 한 정확하고 명료하게 서술하면서 내가 이해한 바를 전달하려 한다.

셋째, 나의 개인적 느낌에 내가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게 공감한 내용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어짊과 옳음(仁義)을 증대시키는 데로 이어지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기존과는 ‘다른 현실’이고, ‘동굴 밖의 더 나은 세계’다.

나는 예술에 기대어 내 삶을 돌아보려 한다. 그렇듯이 독자 역시 내 글을 읽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독자’가 되길 빈다. 플라톤이 동굴 우화를 언급한 것도 ‘교육·형성’을 위해서였다.

문광훈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수영론, 김우창론, 페터 바이스론, 발터 벤야민론 등 한국문학과 독일문학, 예술과 미학과 문화에 대해 20권 정도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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