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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미리 본게 내 죄" 北 폭파뒤, 홍준표가 자주 하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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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는 세상을 좀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라고 한다. “요즘 참 억울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다.

홍 의원은 이런 심정을 17일 페이스북에 썼다. 그는 “남북ㆍ북미회담을 위장 평화 회담이라고 주장했을 때 허접한 여야 정치인과 신문ㆍ방송, 심지어 허접한 개그맨까지 동원해 저를 막말꾼으로 몰아붙였고 ‘정계 퇴출’ 청와대 청원까지 했다”며 “그 사람들은 이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고 했다.

“文 정권, 뒷좌석 앉아 핵무기 쇼 구경”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한 무소속 홍준표 의원.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한 무소속 홍준표 의원. 연합뉴스

홍 의원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북 문제와 관련한 강경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그는 당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대표였다.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2018년 3월 28일, 그는 “운전면허도 없는 문재인 정권이 운전대는 김정은에게 넘겨주고 뒷좌석에 앉아 핵무기 쇼를 구경만 한다”고 비판했다. 이후 열흘 뒤엔 “요즘 문재인 정권이 남북한에 ‘봄이 왔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봄을 ‘Spring’(봄)으로 읽는 사람도 있고, ‘Bomb’(폭탄)로 읽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직후 홍 의원의 비판은 더 거침없었다. 이른바 4·27 판문점 선언 합의문이 나오자 그는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이라고 했다. 그 다음 날에도 “판문점 선언은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與 “낮술 했나?” “대한민국 떠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발표를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발표를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김효은 민주당 부대변인은 “한반도에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속이 뒤틀려도 좀 참으시라. 가을에는 2018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텐데 위장병 생기겠다”고 했다. 홍 의원의 ‘위장 평화 쇼’에 자신의 ‘위장(胃腸) 평화부터 챙기라'고 비꼰 셈이다.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홍준표 대표, 대한민국을 떠나주시라”, 전재수 의원은 “홍 대표, 당신은 어느 민족,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도 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가세해 자신의 SNS에 “홍준표, 참 구질구질하고 찌질찌질하다” “낮술했나? 주사가 심하다”는 등의 글을 연달아 올렸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정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은 홍 의원 바로 아래층이다. 최근 홍 의원을 찾은 정 의원은 “층간 소음 문제 제기 안 할 테니 마음껏 뛰셔도 된다”고 농을 쳤다고 한다.

같은 당 후보도 洪 비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던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던 모습. [중앙포토]

여당의 비판에도 홍 의원은 굴하지 않았다. “두 번 속으면 바보,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29일), “비정상적 합의 이면엔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의 숨은 합의가 자리 잡아”(30일), “문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 등을 거론 못 한 건 포악한 독재자, 어린애 김정은을 달래서 어떻게라도 해보기 위한 것”(5월 1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같은 당인 한국당에서도 홍 의원 비판이 나와서다. 특히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 광역단체장 후보가 비난에 앞장섰다.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든다”(유정복 인천시장),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남경필 경기지사)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판문점선언’ 상징 폭파, 재조명되는 洪의 발언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9일 오전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에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잔해물과 충격으로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뉴스1]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9일 오전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에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잔해물과 충격으로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뉴스1]

최근 북한이 폭파한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27 판문점 공동선언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북한은 16일 이 건축물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비참하게 파괴”(北 조선중앙방송) 했다.

북한의 무력 도발 이후 문재인 정부를 향한 야당의 비판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여정 하명에 계속 굽신굽신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노예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14일 하태경)이라거나  “문재인 정부는 ‘중재자’란 대단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17일 태영호), “통일부 장관뿐 아니라 외교·안보라인 책임자들을 전부 제정신 박힌 사람들로 교체해야 한다”(18일 안철수)는 등이다.

청와대도 북한에 대해 강경 대응 기조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7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측의 이런 사리 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는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 의원은 억울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1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그 당시 제가 당했던 막말 비난과 모욕을 어떻게 해원(解寃, 억울함을 풀다) 해줄 것인지, 이젠 사과라도 한마디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단견(短見)으로 당시 야당 대표를 막가파로 몰아 놓고도 지금 와서 모른 척 한다면 그건 옳은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이런 뻔뻔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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