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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

표현의 자유 억압하고 획일성 강조, 전체주의 어른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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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열린사회와 그 적들

1604년 얀 산레담이 그린 ‘동굴의 우화’.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사람은 동굴 밖의 세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희미한 빛줄기를 좇아 참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철인뿐이다. 어두운 동굴은 현실이며 빛나는 바깥세상은 이데아다. [사진 위키피디아]

1604년 얀 산레담이 그린 ‘동굴의 우화’.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사람은 동굴 밖의 세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희미한 빛줄기를 좇아 참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철인뿐이다. 어두운 동굴은 현실이며 빛나는 바깥세상은 이데아다. [사진 위키피디아]

75년 전 플라톤이 철학의 법정 앞에 섰습니다. 엘리트 선민의식으로 전체주의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이유였죠. 그를 고발한 이는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자 칼 포퍼였습니다. 1945년 그가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지금도 자유세계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읽힙니다. 포퍼는 “우리가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포용사회 강조하지만 #“포퍼는 닫힌사회라 했을 것” #“민주당에는 민주주의자 없어” #정의 ‘독점’ 로베스피에르 비극

포퍼가 플라톤을 비판한 이유는 닫힌사회의 원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포퍼 연구의 권위자인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는 “플라톤이 완성한 전체주의·유토피아주의가 얼마나 교묘하게 구축된 허구적 사상인지 폭로했다”고 말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필연적 법칙과 운명의 틀을 인간에게 뒤집어씌워 이성과 자유를 부정” 했기 때문이죠.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그린 설계도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소수의 엘리트와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이 생겨난 것이었죠.

2000년 넘게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군림한 플라톤은 어쩌다 이런 오명을 얻었을까요? 부유한 귀족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이름의 뜻(plato·넓은)처럼 딱 벌어진 어깨의 거구였습니다. 한때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으나 집안의 전통대로 정치에 발을 담갔죠. 하지만 이내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학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때 만난 스승이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그의 핵심 철학은 ‘지적 겸손’입니다. 어떤 현자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철인정치는 전체주의의 원형

하지만 플라톤은 정반대였죠. 이한구 교수는 “스승의 죽음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합니다. “무지한 우중이 현자를 죽였다고 생각해 선민의식을 가진 엘리트 정치를 꿈꾸게 된 것”이죠.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상적 정치체제로 ‘철인왕’을 꼽았습니다. 지혜로운 엘리트가 지배하는 유토피아입니다. 그의 역사법칙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국가는 부유한 문벌이 지배하는 과두정과 방종이 판치는 민주정을 거쳐 마지막 단계인 참주정으로 퇴보합니다.

대신 플라톤은 통치계급인 수호자(guardian), 국방·치안 등을 담당하는 전사·군인, 생산을 담당하는 시민 등 3계급으로 나뉜 이상국가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수호자는 지혜로운 철인입니다.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데, 참된 정의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철인뿐이기 때문이죠.

포퍼에 따르면 플라톤은 ‘역사법칙주의’의 맹신자였습니다. 역사엔 특수한 법칙이 존재하며, 이를 발견한 철인은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습니다. 이때 법칙에 어긋나는 다른 생각은 배척되고 적폐로 여겨집니다.

포퍼는 선택된 소수만이 역사법칙을 이해할 수 있고 이데아(진리)란 미명 아래 현실을 유토피아로 바꾸려는 것이 독선이라고 생각했죠. 세상은 일순간의 혁명이 아니라, 상대적인 단점들을 하나씩 보완해 나가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방식으로 개선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선 주류 이념 또한 언제든 다른 의견으로 반박될 수 있는 열린사회여야 합니다. 반대로 닫힌사회는 반증 가능성이 없는 원시적 신화와 종교적 믿음에 가깝습니다.

닫힌사회는 개성과 다양성을 말살하고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강요합니다. 이때 권력자는 급진적 탐미주의에 빠지기 쉬운데, 이는 곧 폭력으로 전이됩니다. 포퍼는 “상대적으로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추함이 전혀 없고 완전히 아름다운 세계를 꿈꾼다”며 “탐미적 열광은 병적 흥분 상태로 발전하기 쉬우며 이상 실현을 명목으로 폭력을 긍정하고 급기야는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게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이죠. 플라톤의 철인은 나치즘에선 우성인자를 가진 아리아인으로, 마르크시즘에선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대체됩니다. 이들 모두 자신과 다른 집단을 배격하며, 피아 구분이 명확한 닫힌사회의 추종자들입니다. 세상을 설계도처럼 만드는 과정에서 대중은 언제든 대의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하나의 부품일 뿐이고요.

만일 포퍼가 한국 사회를 본다면 어떤 진단을 내릴까요. 이한구 교수는 “포퍼는 아마도 닫힌사회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열린사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사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와 배치되는 일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다른 생각을 거부하는 여권의 행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썼다 고발당한 임미리 교수, 당론을 거부하고 소신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된 금태섭 전 의원처럼 다양성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이 비판적인 글을 쓴 기자나 교수에게 ‘댓글 테러’와 ‘신상 털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 결과 지식인의 입에는 재갈이 물립니다. 서울대 교수 A씨는 “정권에 할 말은 많지만 이미 ‘적폐’로 몰려 많은 공격을 받고 있어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경희대 교수 B씨도 “괜히 찍히면 골치 아프다, 댓글 테러와 신상 털기가 두렵다”고 토로합니다. ‘문빠는 미쳤다’ 등의 칼럼으로 곤욕을 치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멘탈이 약한 교수들은 (댓글 테러 등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은 “생각 같아서는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30배, 300배 때리고 싶다”(정청래)며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아울러 대북 전단까지 금지하는 법안을 내고, 통일부는 아예 전단 배포 단체를 고발했죠. 최근에는 토지거래허가제 실시와 외고·자사고 폐지 등으로 사유재산 및 학교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강조해온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조그만 비판도 용납 안 해

닫힌사회는 권력자에 대한 조그만 지적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의전 대통령’ 발언으로 여권의 뭇매를 맞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겐 쥐박이, 2메가, 귀태, 그년 같은 표현을 해놓고 지금은 작은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며 “어느새 문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상징이 돼버렸다”고 말합니다.

비판이 사라진 곳엔 권력을 향한 찬가만 남았죠. “달빛 소나타가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며 ‘월광’을 피아노로 연주했던 낙선 의원은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한 검사는 유명 소프라노가 부른 ‘달님에게 보내는 노래’를 대통령에게 바치는 것인 양 SNS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고요. 열린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개인숭배와 우상화의 모습입니다.

모든 권력은 달콤함에 취해 쓴소리를 배척합니다. 과거 군사정권이 국가보안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 것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도 그 때문이었죠. 하지만 촛불시위 덕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라면, 적어도 그들이 적폐라고 지목했던 권위주의 세력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 진영의 원로들조차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민주당엔 민주주의자가 없고”(홍세화) “도덕·정신적으로 파탄 나 전체주의와 비슷”하며(최장집), “자신의 선한 의지를 확신해 문제가 생기면 상대에게 책임을 씌우고 적폐로 몰아간다”(한상진)는 것이죠.

모든 혁명은 선의로 시작되지만, 정의를 독점하는 태도가 악을 낳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서민을 위한 변호사’로 존경받던 로베스피에르가 그랬죠. 그는 자코뱅당을 이끌며 정적들을 모두 단두대에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인권을 억압하는 자를 응징하는 게 자비이며 이들을 용서하는 건 야만”이라고 했죠. 하지만 그 또한 몇 년 후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처형됩니다.

유토피아와 전체주의는 한 끗 차이입니다. 닫힌사회로 치닫는 지금, 한 유령의 그림자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전체주의라는 유령이.

등장인물·이론

칼 포퍼

칼 포퍼

칼 포퍼
(1902-1994). 평생을 전체주의와 싸워온 자유세계의 대표 철학자.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의 구분을 ‘반증 가능성’에서 찾았다. 반박될 수 없는 이론은 종교적 믿음일 뿐이다. 진리를 강조하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플라톤주의를 비판했다.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1516년 토머스 모어(사진)가 쓴 소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에서 시작된 이상 국가의 모습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계획 자체는 선한 의도를 띠지만,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과 폭력이 수반된다.

마르크스

마르크스

역사법칙주의
노예제와 봉건국가, 자본주의를 거쳐 마지막엔 공산사회에 이른다는 마르크스(사진)의 주장처럼 역사 발전엔 법칙이 있고, 이를 깨달으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입장. 포퍼는 플라톤, 헤겔 등을 대표적인 역사법칙주의자로 비판했다.

열린사회

열린사회

열린사회·닫힌사회
닫힌사회는 정해진 역사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소수가 진리를 독점하고 반대 의견이 용납되지 않는다. 열린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역사는 급진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개선을 통해 발전된다.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