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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창의는 다양한 만남에서 싹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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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공유 오피스 업체 패스트파이브 박지웅·김대일 공동 창업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세상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손을 탔던 물건은 왠지 찝찝하다. 심지어 “한국 특유의 ‘반찬 공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공유경제는 타격을 받으리라고 누구나 예상했다. 공유 오피스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세계 최대 업체인 위워크(WeWork)가 지난해 미국에서 상장에 실패한 판이 아니던가. 공유 오피스 업계에는 악재 중의 악재였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온갖 업종 입주한 공유 오피스 #대기업 TF·신사업팀도 들어와 #색다른 경험과 아이디어 공유 #코로나19에도 공실률 3% 그쳐

그런데 뜻밖이다. 이 회사, 흔들림이 없다. 2015년 창업한 국내 공유 오피스 벤처 ‘패스트파이브(FASTFIVE)’ 얘기다. 코로나19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멤버(입주자)가 쭉쭉 늘어난다. 지난해 말 1만1900명에서 올 3월 1만4500명, 지금은 1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신규 공유 오피스 지점을 내는 족족 들어찬다. 공실률이 3% 정도다. 어느새 국내 시장에서 위워크와 자웅을 겨룰 정도가 됐다.어찌 된 연유일까. 패스트파이브 공동창업자인 박지웅(38) 이사회 의장과 김대일(37) 대표를 만났다.

서울 을지로입구의 패스트파이브 시청점 라운지. 왼쪽이 김대일 대표, 오른쪽이 박지웅 이사회 의장이다. 라운지 한쪽에는 우유와 시리얼, 수제 맥주 등을 무료로 주는 바가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 을지로입구의 패스트파이브 시청점 라운지. 왼쪽이 김대일 대표, 오른쪽이 박지웅 이사회 의장이다. 라운지 한쪽에는 우유와 시리얼, 수제 맥주 등을 무료로 주는 바가 있다. 최정동 기자

코로나19가 호재가 된 것 같다.
▶박지웅 의장(이하 박 의장)=“우리도 신기했다. 예상치 못했던 포인트가 있더라. 큰 회사는 다닥다닥 붙어 일하는 직원들을 뚝뚝 떼어 놓고 싶어했다. 공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오피스를 새로 구하려면 계약하고 인테리어 공사하는 데 두 세 달은 걸린다. 또한 한번 계약하면 2, 3년은 써야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공유 오피스는 마음에 들면 바로 입주할 수 있고, 3개월 뒤면 나갈 수도 있다. 이런 즉시성과 유연성이 큰 회사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소기업은 어떤가.
▶박 의장=“이면도로의 허름한 건물에 들어 있던 작은 업체들이 방역 걱정에 공유 오피스로 많이 옮겼다.”
코로나19 전에도 빠르게 성장했다. 공유 오피스 수요를 일으키는 요인이 뭔가.
▶김대일 대표(이하 김 대표)=“오피스는 인재에 대한 투자다. 서울 강남이나 을지로 등지에 번듯한 오피스가 있어야 인재가 온다. 그러나 벤처나 작은 기업들이 비싼 도심·강남에 라운지·회의실까지 갖춘 사무실을 차리기는 만만치 않다. 공유 오피스가 솔루션이다.”
요충지에 번듯한 사옥이 있는 대기업들은 공유 오피스 수요가 별로 없을 것 같다.
▶박 의장=“대기업에서는 TF나 신사업을 기획하는 팀들이 들어온다. 본사 안에 있으면 생각이 갇힌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팀이 온다는 소리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공간 설계 같은 것도 하나.
▶김 대표=“열린 공간보다는 ‘다양한 변주’가 중요한 것 같다. 생각이 잘 안 날 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다른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거다. 자기 자리에서 일하다 공용 라운지에도 가고…. 다른 패스트파이브 지점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도 있다.”
지점마다 라운지 생김새나 분위기가 다른가.
▶김 대표=“우리 회사 디자이너들이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걸 싫어한다.”

▶박 의장=“창의성에는 다른 의미의 다양성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공유 오피스에는 별별 업종이 다 들어온다. 색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새 아이디어를 얻는 거다. 지점마다 ‘커뮤니티 매니저(패스트파이브 직원)’들이 북 콘서트를 열거나 회계·투자 강연 같은 것을 만들어 다양한 입주자들이 모이고 만나도록 한다. ‘다양한 사람이 만나 창의성이 싹트는 곳이 공유 오피스’라고 말하고 싶다.”

오피스를 빌려주는 것뿐 아니라 네트워킹 서비스까지 하는 셈인데.
▶김 대표=“입주 업체가 인공지능(AI)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전문가 연결도 해 준다. 입주 회사 간에 커뮤니티가 형성돼 그 안에서도 서비스와 각종 혜택이 오간다. 세무·회계 업체가 벤처에 할인을 해주는 식이다. 식음료 회사는 입주사를 대상으로 새 제품 시음회를 열고, 가격을 50% 깎아주기도 한다.”
위워크는 왜 어려움을 겪나.(※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3조원을 투자했으나 위워크는 대규모 적자를 내고 결국 상장에 실패했다.)
▶김 대표=“공유 오피스는 공간을 빌려 다시 임대를 주는 사업이다. 처음에 건물주에게서 공간을 얼마나 싸게 임대하느냐가 경쟁력과 수익성을 좌우한다. 싸게 빌리려면 국가·지역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오피스텔은 임대료 시세가 있어도 오피스는 없다. 바로 옆에 있는 비슷한 퀄리티의 건물도 임대료가 30~40%까지 차이 난다. 많은 건물을 돌아봐야 가성비 높은 건물을 고를 수 있다. 그런데 위워크는 급격하게 해외 사업을 확장했다. 이러면 싸게 빌딩을 얻기 어렵다. 공유 오피스는 글로벌 회사가 로컬에서 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과신했던 것 같다.”

▶박 의장=“사업 모델의 실패라기보다 경영의 실패라고 본다. 결과적인 실패가 아니고 과정에서 실패를 겪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위워크가 잘 되고 있다.”

입주자가 젊다(30대 이하가 75%). 분위기를 맞추려 특별히 제한을 두는 것인가.
▶김 대표=“사실 처음에 나이 드신 분들을 막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와서 공유 라운지를 보고 불편하게 느꼈는지 계약을 잘 안 하시더라. 자연스럽게 젊은 입주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서울 강북과 강남에 어떤 차이가 있나.
▶김 대표=“강남이 더 젊다. 강북은 양복 위주고 강남은 아니다. 강남 테헤란로는 특히 공유 오피스와 분위기가 맞는 지식산업이 많다. 그래서 지점을 강남에 많이 두고 있다.”
라운지에서 수제 맥주를 무한 제공하는 건 어디서 얻은 아이디어인가.
▶박 대표=“위워크에서 배웠다. 입주 멤버들이 생각보다 맥주를 잘 안 마신다. 젊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오후 6~7시면 대부분 퇴근한다. 오후 7시쯤 둘러보면 대부분 나가고 없다.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경우에 한두 잔 마시는 정도다.”
보증금을 받지 않던데.
▶김 대표=“보증금을 받는 건 임대료가 밀릴까 봐서다. 해 보니 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못 낼 것 같으면 그냥 쿨하게 나가더라.”
앞으로 재택근무가 늘면 공유 오피스 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박 의장=“재택근무가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SK텔레콤은 최근에 ‘거점 오피스’를 많이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직원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일하도록 하겠다는 거다. 회사 사무실 근무도, 재택근무도 아닌 일종의 대안적인 형태다. 이런 게 많아지면 공유 오피스는 유리하다. 그러나 SK텔레콤 같은 거점 오피스가 널리 퍼질지는 알 수 없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이 공동 창업으로

박지웅 패스트파이브(FASTFIVE) 이사회 의장은 김대일 대표의 대학교 1년 선배다. 박 의장은 포스텍 산업공학과, 김 대표는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경영·경제·창업을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만났다. 졸업 후에는 둘 다 경영컨설팅 회사와 벤처캐피털 등에서 일했다.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같은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의기투합해 2015년 패스트파이브를 창업했다. 강남 지역 카페에 직장인과 프리랜서들이 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되겠다 싶었다”(김 대표)고 했다.

사업 모델은 요충지 건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려 인테리어를 꾸며서는 재임대하는 것이다. 건물의 상당 부분을 통으로 빌리기에 패스트파이브는 싸게 세낼 수 있다. 이걸 다시 재임대해 차익을 거두는 게 공유 오피스 사업 모델이다. 최종 입주자에게도 이익이 있다. 회의실 등을 공동 사용하기 때문에 실질 임대 면적이 줄어 임대료를 덜 내는 효과를 본다. 현재 패스트파이브 임대료는 지역에 따라 1인당 월 35만~70만원이다.

패스트파이브의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6년 25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425억원으로 3년 새 17배가 됐다. 덩치가 커지면서 자재·소모품을 살 때 ‘규모의 경제력’이 생겼다. 커피만 해도 한 달에 1t을 사니 구매 단가가 3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총 750억원을 투자받았다. 신한은행·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IMM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했다. 공유 오피스에 들어온 벤처캐피털로부터도 투자를 얻었다고 한다.

공유 오피스를 기반으로 기업 사무 공간 컨설팅을 해주는 ‘오피스 솔루션’ 사업과, 건물의 임대 가치를 높여주는 ‘빌딩 솔루션’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현재 서울 강남·을지로·홍대입구·성수 등 25곳에 있는 지점을 올해 말까지 3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김대일 대표는 “지방에서도 건물에 패스트파이브를 유치하겠다는 요청이 있으나 당분간은 수요가 많은 서울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패스트파이브는 …

▶사업 시작 2015년
▶보유 오피스  서울 강남·을지로·홍대입구 등 25개 지점, 연면적 3만1000평
▶누적 투자유치 750억원
▶임대료 지역에 따라 1인당 월 35만~70만원
▶2019년 경영 실적 매출 : 425억원
영업이익 : -49억원(적자)

패스트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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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