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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 “비자금 수사 말라” YS 설득…97년 DJ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8일 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이건희 회장의 조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18일 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이건희 회장의 조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1961년 서울대 문리대 61학번으로 만났으니 60년 지기다. 준수하고 차분하고 돋보이는 특별한 친구다. “(덕)용아, 용아” “야, 용아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곤 했다. 먼 길을 함께 걸어왔다는 생각이다.

60년지기 김덕룡 ‘친구여 잘 가라’

언론인(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대성할 거라고 여겼는데 11대 국회에 등장했다. 민한당 소속이었는데 당시 민한당은 ‘어용 야당’으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홍사덕이 있어서 민한당이 야당”이라고 했다. 스타 탄생이었다.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가며 밖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결정적 역할을 하곤 했다. 무엇보다 1987년 6월항쟁을 낳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서다. 형무소에 있던 이부영(전 의원)이 비밀리에 김정남(전 청와대 교문수석)에게 알려 세상에 공개된 거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정남이 수배 중이었는데 그가 어렵게 도망 다닐 때 그와 그 가정을 보살핀 게 고인이었다. 세비를 받아서 가져다주곤 했다.

85년 2·12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켜 제1 야당이 되면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졌다. 민한당을 제일 먼저 탈당해, 그 흐름을 만들어낸 게 고인이었다.

YS(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선거 중립 내각에 고인이 정무장관으로 참여했다. DJ(김대중) 비자금 문제가 나왔다. 이회창 후보 측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했지만 YS가 보류했다. 고인이 YS 설득을 많이 했다. 만일 수사를 했더라면 DJ의 당선이 있었을까, 선거가 제대로 치러졌겠는가.

나의 다음으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이 되었는데 남북화해와 통일 문제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2월 입원 중이던 고인을 병문안했는데 내내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해 역설했다. 저 세상에서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응원할 것이라고 본다.

60년을 돌아보면 길을 달리하기도,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다. 인간적 신뢰와 우정을 서로 버린 일이 없었다. 고인이 가진 청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나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친구여, 잘 가라. 명복을 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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