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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거짓말쟁이, 북·미회담 중 폼페이오가 쪽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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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홍콩 보안법’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홍콩 보안법’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 성공 확률을 ‘제로(0)’로 깎아내렸다고 존 볼턴(사진)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폭로했다. 회고록에는 또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정상회담 중 트럼프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비하하는 쪽지를 보냈다는 내용도 담겼다. 회고록은 오는 23일 나올 예정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출간 금지 소송을 내자 미 주요 언론에 592쪽 분량의 책을 공개했다.

볼턴 ‘회고록 폭탄’에 워싱턴 파문 #“트럼프, 시진핑에 재선 도움 간청” #볼턴, 백악관 출판금지 소송에 공개 #“농민표 위해 농산물 구매 청탁도” #폼페이오 평양 방문 때 비화도 폭로 #“트럼프, 엘턴 존 사인 로켓맨 CD #김정은에 건네려고 했지만 실패”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공개한 볼턴 전 보좌관의 신간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도중 볼턴에게 “그(트럼프)는 거짓말쟁이(He is so full of shit)”라고 적힌 쪽지를 몰래 건넸다. 볼턴은 또 저서에서 싱가포르 회담 한 달 뒤 폼페이오가 트럼프의 대북 외교를 가리켜 “성공할 확률이 제로(zero probability of success)”라고 일축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회담 뒤 폼페이오가 3차 방북에 나섰다가 별 성과없이 귀국했던 시점으로 추정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싱가포르 회담 20여일 뒤인 7월 6∼7일 방북했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되면서 ‘빈손 귀환’ 논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볼턴 회고록을 토대로 트럼프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마치고 나서 대화를 끌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에 대해 폼페이오가 볼턴과 같이 무시했다고 전했다. 당시 폼페이오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장길에 통화를 들었는데 심장마비가 온다는 농담으로 경멸을 표현했고, 볼턴도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었다고 조롱했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친분을 맺기로 결심한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미국 선물을 주고 싶어 했고, 이는 미국의 대북제재에 위반됐다. 볼턴은 이날 ABC 방송 인터뷰에서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김 위원장과의 회동도 사진찍기에 상당한 방점을 두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시진핑에 중국 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치켜세워”

볼턴이 폭로한 트럼프의 치부

볼턴이 폭로한 트럼프의 치부

결국 트럼프 고집대로 선물에 대해 제재를 면제해야 했다고 볼턴은 책에 적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관해서도 볼턴은 트럼프는 비핵화 조치의 세부사항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회담을 언론의 시선을 끄는 미디어 행사로만 봤다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실질적 내용은 없는 공동성명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고 했고, 기자회견에서 승리를 선언한 뒤 도시를 떠났다”고 했다.

싱가포르 회담 뒤 몇 달간 트럼프는 폼페이오가 엘턴 존이 친필 사인한 ‘로켓맨’ CD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데 과도하게 집착했고, 같은 해 7월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 때 가져가도록 했다. ‘리틀 로켓맨’은 당초 김 위원장을 비판할 때 쓴 말이지만 나중엔 애정이 깃든 용어라고 믿게 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폼페이오와 김정은 면담은 불발됐는데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실제 못 만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CD를 전달했는지 물었고, 폼페이오가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개월 동안 CD 전달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볼턴은 묘사했다.

“폼페이오, 대북외교 성공확률 제로 혹평”

볼턴은 17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와 배석자 없이 단독회담을 한 것은 북한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 1·2차 정상회담에서 각각 단독으로 회담했다. 북·미 정상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대화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하노이 회담의 경우 단독회담에 이어 배석자가 참석한 확대 회담에서 회담이 결렬됐다. 당시 확대 회담에는 볼턴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 외에도 러시아와 중국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만날 것을 요청했다면서 “적대 국가의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재선 승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트럼프를 이용할 수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달인이라는 것은 뉴욕의 부동산 거래 정도에나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했다.

회고록은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자신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지난해 6월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회의 당시 미·중 양자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뜻밖의 화제를 미 대통령 선거로 돌리며 넌지시 중국이 경제력으로 선거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암시했고, 시 주석에게 ‘내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 주석이 “미·중 관계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데 일부 미국 정치인이 중국과 신냉전을 촉구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트럼프는 이에 “민주당 안에 중국에 대한 엄청난 적대감이 있다”고 하면서 농업 주의 대두·밀 등 농산물 구매를 늘려 대선 승리를 도와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볼턴은 “트럼프의 정확한 말을 그대로 출간하고 싶었지만, 정부의 발간 전 검토 절차가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남은 3500억 달러 대중 무역 적자분에 관세를 매기지 않는 대신 농산물 구매를 늘려 달라”고 거듭 졸랐고, 결국 시 주석도 무역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기뻐하며 “당신은 300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했다가 몇 분 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볼턴은 트럼프의 지적 수준을 비판하는 대목도 책에 담았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공인한 5대 핵 강국 중 영국이 핵보유국인지 모르는 듯 보였고, “핀란드가 러시아의 일부냐고 묻기도 했다”고 적었다. WP는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면 멋질 것”이라면서 베네수엘라가 사실은 미국의 일부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을 자꾸 헛갈려 했다고도 적었다.

트럼프 “볼턴은 볼장다본 인간” 맹비난

트럼프는 이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부인하진 않으며 “나보다 중국에 강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고도의 기밀이며,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볼턴을 “완전히 실패한, 볼장 다본 인간(washed-up guy)”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 법무부는 17일(현지시간) 볼턴의 회고록 공개 중지를 요구하는 긴급명령을 법원에 요청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국가 기밀이 담긴 회고록을 정부 차원의 검토가 끝나기 전에 공개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여러 국제 사안을 두고 트럼프와 충돌을 빚다 경질됐다. 또 폼페이오 장관과도 불화한 것으로 알려져 회고록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탄핵 국면에는 의회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 장외 폭로만 하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김필규·백희연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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