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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해서 또 등록금 내라니"···'툭하면 나랏돈' 선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됐는데 또 등록금 내게 생겼네”  

18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이다. 국가 재정을 써서 대학 등록금 환불을 지원하겠다는 당‧정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다. 내가 낸 세금이 왜 등록금 환불에 쓰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장에서]'재정 만능' 만연한 정치권

대학생들이 '대학교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국회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대학생들이 '대학교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국회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등록금 환불 지원책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정확하게 대학 실태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한 후부터다. 여당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학 당국에 반환 요구를 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대학 등록금 반환과 관련해 "정부·학교·학생들이 서로 분담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대학이 환불해주는 금액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자는 것이다. 올해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 관련 예산을 끼워 넣는 방안이 오르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대학생”(김경협 의원)이라는 논리다.

피해를 본 건 맞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수업을 받지 못했고, 학교 시설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이런 피해를 혈세로 보전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다. 코로나19로 질 낮은 서비스를 받았으니 환불해 달라는 고객(대학생)의 요구에 응대해야 하는 건 상품을 제공한 대학이다. 재화·용역의 대금(등록금)을 주고받는 당사자끼리 해결할 문제다. 코로나 19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대학생만은 아니다. 게다가 마치 '대학생= 취약계층'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치에 어긋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래서다. 홍 부총리는 “등록금 반환은 등록금을 수납받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이 200만명인데 절반인 100만명이 소득분위 8·9·10등급으로 가장 상위계층”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 또래이면서 여러 사정으로 대학을 가지 못한 청년들에게 상실감을 줄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쓸 곳도 많은 상황에서 재정은 이미 헐거워진 상태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홍 부총리 입장에서 당연한 반대 의견이다. 교육부도 일단 “(대학생에게) 직접적인 현금 지원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밝혔다. 하지만 긴급 재난지원금 100% 지급의 ‘효과’를 체감한 당정이 등록금 환불 지원을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정의당, 미래통합당 등 야당도 인기 있을 법한 이 정책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모양새다. 일만 생기면 나라 곳간을 털어 해결하려는 재정 만능주의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만연하다.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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