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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피해자' 극적반전…연어의 누명 뒤엔 '베이징 음모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는 17일 하루 21명이 늘어 7일간 158명을 기록했다. 베이징을 긴장시키고 있는 이번 코로나 사태의 주범은 정말로 연어인가. ‘연어는 죄가 없다’는 정황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어 주목된다. 왜 중국 당국이 서둘러 수입 연어를 의심하는 내용을 흘렸는지도 관심이다.

17일 베이징의 한 공사장에서 근무에 들어가기 전 직원 전체에 대한 코로나 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베이징은 17일까지 약 35만 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17일 베이징의 한 공사장에서 근무에 들어가기 전 직원 전체에 대한 코로나 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베이징은 17일까지 약 35만 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연어가 베이징 코로나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건 지난 12일 밤이었다. 이번 베이징 사태의 진앙인 신파디(新發地)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장위시(張玉璽) 사장이 중국 언론에 밝힌 내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신파디 시장의 “수입 연어를 처리하는 도마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말했다. “수입 연어는 베이징의 징선(京深) 해산물 도매시장에서 들여왔다”며 신파디 시장의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과일, 채소 등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첫 환자를 낸 베이징 코로나 사태는 신파디 해산물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터졌다. 현재 환자의 절대다수가 신파디 시장 상인이나 이 시장을 다녀간 사람이다. [차이나데일리 캡처]

지난 11일 첫 환자를 낸 베이징 코로나 사태는 신파디 해산물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터졌다. 현재 환자의 절대다수가 신파디 시장 상인이나 이 시장을 다녀간 사람이다. [차이나데일리 캡처]

14일 밤엔 베이징질병통제센터의 양펑(楊鵬)이 “유전자 서열을 볼 때 바이러스는 유럽 쪽에서 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중국 전역에 현재 베이징을 강타 중인 코로나는 유럽에서 수입한 연어가 주범일 것이라는 소문이 확 퍼졌다.
중국은 15일부터 연어 수입을 중단했고 슈퍼나 상가의 연어는 가판대에서 모두 내려졌다. 연어를 취급하는 일식당은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이후 중국 언론의 취재와 전문가 발언에선 연어가 무죄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 한 시장의 연어 판매대. 베이징 코로나 사태의 주범으로 연어가 지목되면서 해산물 시장과 일본음식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싼롄생활주간망 캡처]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 한 시장의 연어 판매대. 베이징 코로나 사태의 주범으로 연어가 지목되면서 해산물 시장과 일본음식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싼롄생활주간망 캡처]

중국 산롄(三聯)생활주간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신파디 시장이 연어를 들여왔다는 베이징 펑타이(豊台)구징선 해산물 도매시장엔 12일 아침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신파디 시장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으니 모두 영업을 중단하고 대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2일 점심 무렵 방역 요원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연어를 취급하는 모든 상인을 따로 모아 핵산 검사를 실시했다. 다른 수산물을 다루는 상인들은 각자 자기 가게를 지켰다. 연어 판매대와 하수도 등을 중심으로 정밀 조사가 이뤄져 469개의 샘플이 채취됐다.

베이징 펑타이구의 징선 해산물 도매시장에선 연어를 취급하는 상인과 환경을 대상으로 469건의 샘플을 채집했지만 양성 반응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베이징 펑타이구의 징선 해산물 도매시장에선 연어를 취급하는 상인과 환경을 대상으로 469건의 샘플을 채집했지만 양성 반응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환경 샘플 283건, 상인 186명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 것이다. 상인들은 시장 귀퉁이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이튿날 새벽인 13일 오전 4시 30분 나왔다. 모두 음성으로 코로나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징선 해산물 도매시장의 연어에선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또 중국의 수입 중단에 놀란 노르웨이와 덴마크령 페로 제도의 연어 회사도 직원들에 대해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지만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도 코로나 방역 요원들이 연어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중국 대중망 캡처]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도 코로나 방역 요원들이 연어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중국 대중망 캡처]

이제까지 중국의 많은 전문가는 어류인 연어가 코로나의 직접적인 전염원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해외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이 연어 처리나 포장에 관여했을 때 바이러스가 묻혀 중국으로까지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르웨이 현지의 연어 처리 업체와 이를 들여온 베이징 징선 해산물 시장에선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16일 밤에는 연어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더 중요한 내용이 밝혀졌다.

중국질병통제센터 부주임 스궈칭은 ’신파디 시장의 오염된 곳에서 오염된 연어를 확인했다“면서도 ’신파디 시장에 들어오기 전의 연어에선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어가 신파디 시장에 들어와 오염됐다는 이야기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질병통제센터 부주임 스궈칭은 ’신파디 시장의 오염된 곳에서 오염된 연어를 확인했다“면서도 ’신파디 시장에 들어오기 전의 연어에선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어가 신파디 시장에 들어와 오염됐다는 이야기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질병통제센터 응급센터 부주임이자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인 스궈칭(施國慶)은 “신파디 시장의 오염된 장소에서 연어가 오염된 걸 확실하게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염된 장소에 들어오기 전의 연어에서는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입 연어가 신파디 시장으로 오기 전까지는 깨끗했다는 이야기다. 신파디 시장으로 운반된 뒤 바이러스에 오염된 시장 안에서 오염됐다는 것이다. 연어가 코로나 전파의 범인이 아니라 코로나에 의해 오염된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베이징 신파디 시장의 연어를 처리하는 도마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중국 전역의 해산물 시장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구이성의 성도 구이양의 한 시장에서 위생 요원들이 수산물을 검사하는 모습. [중국 귀주일보망 캡처]

베이징 신파디 시장의 연어를 처리하는 도마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중국 전역의 해산물 시장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구이성의 성도 구이양의 한 시장에서 위생 요원들이 수산물을 검사하는 모습. [중국 귀주일보망 캡처]

한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장위시 사장은 12일 밤 기자회견에서 신파디 시장의 표본 40개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면서 오로지 ‘연어를 처리하는 도마’만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바이러스가 나온 다른 표본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자연히 대중의 의심은 연어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연어 수출국이 입을 타격은 자명하다. 중국에 주로 연어를 수출하는 나라는 노르웨이로 중국과는 악연이 있다. 2010년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 양국 관계가 악화했다.

코로나 사태로 학생들의 등교 수업이 중단되자 17일 베이징의 학생들이 가방을 챙겨 일제히 학교를 떠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코로나 사태로 학생들의 등교 수업이 중단되자 17일 베이징의 학생들이 가방을 챙겨 일제히 학교를 떠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연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던 노르웨이는 이후 중국의 보복을 당해 판매가 70%나 급감하기도 했다. 2015년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노르웨이가 가입하며 양국 관계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다시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출현한 코로나의 기원은 아직 불분명하다. 처음엔 우한의 화난(華南)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팔던 야생동물 특히 박쥐가 코로나의 주범으로 의심받았지만 이는 얼마 안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베이징 코로나 사태의 범인으로 연어가 언급되면서 중국 각지에서 연어에 대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대중망 캡처]

베이징 코로나 사태의 범인으로 연어가 언급되면서 중국 각지에서 연어에 대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대중망 캡처]

화난시장에서 박쥐를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천산갑이나 뱀 등이 중간숙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중국 당국이 서둘러 소독 작업을 하는 바람에 동물 샘플 채취해 실패했고 이후 코로나의 기원은 미궁에 빠져버렸다.
베이징과 우한의 공통점은 코로나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해산물을 파는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급격하게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재 베이징의 코로나 환자 절대다수가 신파디 시장의 상인이나 신파디 시장을 다녀간 사람들이다.

베이징 디탄의원에 입원 중인 코로나 환자. 디탄의원엔 베이징 19개 병원에서 차출된 100명의 의료진이 코로나 전담 치료에 나서고 있다. 병상도 220개에서 4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베이징 디탄의원에 입원 중인 코로나 환자. 디탄의원엔 베이징 19개 병원에서 차출된 100명의 의료진이 코로나 전담 치료에 나서고 있다. 병상도 220개에서 4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질병통제센터는 지난 12일 신파디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표본을 추출해 13일엔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 측정 등 분석을 마치고 이미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바이러스가 처음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근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은폐와 기만이란 말을 들었던 우한의 실패가 베이징에서도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한데 서둘러 “수입 연어를 처리하는 도마”라 말하고 또 이번 코로나가 “베이징이 아닌 외지 또는 외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낳게 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신파디 시장이 연어 들여온 해산물 시장에선 #표본 469건 모두 바이러스 나오지 않아 #노르웨이 수출업체 직원도 음성 #중국 질병통제센터 응급센터 부주임 #"시장 오기 전 연어에선 바이러스 발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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