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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탄 듯 편안···韓최초 기동헬기 수리온, 동남아로 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르포] 한국 최초 기동헬기 수리온 타보니

지난 17일, 경남 사천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고정익 조립동. 기둥 없이 넓게 펼쳐진 2만3189㎡ 공간엔 한국 최초의 기동헬기 수리온(KUH-1)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제 막 동체를 붙인 헬기와 마지막 공정에 돌입한 헬기까지 약 10여 대가 정렬해 있었다.

KAI 고정익 조립동 수리온 제작 현장. 사진 KAI

KAI 고정익 조립동 수리온 제작 현장. 사진 KAI
KAI 고정익 조립동 수리온 제작 현장. 사진 KAI
KAI 고정익 조립동 'T-50' 제작 현장. 사진 KAI

2층 전망대에 서면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 조립동이 한눈에 보인다. 수리온 맞은편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의 꼬리 부문 조립이 진행 중이었다. 수리온 조립은 오는 9월 회전익 동으로 모두 옮겨가는데, 이후 고정익 조립동은 본격적으로 KF-X의 동체 제작에 들어간다. 다른 한편에선 국산 고등훈련기 'T-50'과 'KT-1' 제작이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수십여 대의 미완성 기체가 착착 돌아가는 현장은 한국 방산항공의 전진기지였다.

이진재 KAI 운영본부장은 "항공기 조립은 '펄스(Pulse)'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무빙 라인'이 아니라 한 공정을 마치면, 일시에 한 스텝씩 전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수리온의 부품은 20만 개에 이른다. 250여개 납품업체서 만든 부품은 약 6개월간 동체 조립 공정을 거쳐 2개월의 테스트 비행을 마친 후 수리온으로 태어난다.

이날 조립동엔 동남아 16개국 대사와 외교 관계자가 방문했다. KAI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해외의 국제 방산 전시회가 열리지 않자 사천 본사로 외교 관계자를 직접 초청해 마케팅에 나섰다. KAI에 따르면 각국 외교 관계자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특히 "방글라데시가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헬기 국산화 15%, 이젠 동남아로 간다  

수리온은 국군의 노후헬기 대체를 목표로 2006년 개발돼 6년 후 시제기 생산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한국은 전 세계 열한 번째로 헬기 개발국이 됐다. 이후 약 130여 대가 현장에 투입됐다. 100여 대를 납품한 군수용 'KUH-1'을 시작으로 경찰청 '참수리(KUH-1P)' 8대를 비롯해 해경 2대, 소방·산림청 각 1대씩이다. 국내서 운용 중인 헬기가 800여 대인 점을 고려하면 점유율은 15%다. 수리온 전에는 모두 수입했다. KAI 관계자는 "앞으로 군에 납품할 수리온이 수십여대 남아 있다. 경찰청 등과도 추가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헬기 보급을 바탕으로 수리온은 동남아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KAI는 아시아에선 인도·중국을 빼면 헬기를 제조하는 국가가 없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봉근 KAI 수출 담당 상무는 "수리온은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군의 작전 능력에 맞춰 개발된 기체로, 산이 많은 동남아에 적용될 수 있다"며 "러시아·중국 헬기는 가격은 싸지만,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 한국은 검증된 프랑스 모델을 기반으로 선진화한 장비를 탑재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인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남미에선 KT-1을 발주한 페루 등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리온의 가격은 같은 급의 러시아산보다 비싼 200억~250억원이다.

동남아에선 군·민수용 헬기 수요를 노리고 있다. 김덕관 항공우주연구원 회전익기연구팀 총괄은 "동남아는 섬이 많고 숲이 많아 제자리 이착륙 헬기 운용이 필수다. 경제·복지 성장에 맞춰 의료·구호 헬기 수요가 늘 것"이라며 "한국이 보유한 기술을 유럽·미국보다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처럼 편안한 12인승 헬기 

KAI 활주로에 주기 중인 수리온(왼쪽)과 경무장헬기 LAH. 사천=김영주 기자

KAI 활주로에 주기 중인 수리온(왼쪽)과 경무장헬기 LAH. 사천=김영주 기자

조립동 북쪽 문을 열면 사천비행장과 연결된 활주로다. 군에 납품할 최신 KUH-1 한 대와 개발을 마치고 테스트 비행 중인 경무장 헬기 'LAH' 시제기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두 헬기 모두 무장을 한 상태로 테스트 중이었다.

활주로엔 이날 방문한 16개국 대사를 태울 경찰청 참수리 3대가 이륙을 준비 중이었다. 2013년 시제기부터 약 500시간 참수리 조종간을 잡은 박형식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는 "버튼 몇 번으로 조작하는 자동조종장치 등 안전성·편의성이 뛰어나다. 미국·이탈리아 등 헬기 선진국보다 역사는 짧지만, 한국형 지형에 강하다"고 했다.

경찰헬기 참수리.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난 17일 KAI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 중인 경찰헬기 참수리. 김영주 기자
지난 17일 경남 사천 KAI 활주로에서 경찰헬기 '참수리'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 KAI
지난 17일 경남 고성·남해 일대를 비행 중인 경찰헬기 참수리 내부. 김영주 기자

각국 대사가 내린 후 중앙일보 기자도 참수리에 올랐다. 조정석 뒤로 4열 12석 시트가 있는 내부는 미니버스처럼 넓었다. 부조종사석에 앉은 김찬동 KAI 시제기 조종사는 "헬기의 성능은 제자리 비행 능력에 있다. 수리온은 백두산 꼭대기 높이인 9000피트(약 2700m) 상공에서도 안정적인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 레펠링(강하)·호이스트(끌어올리기)·특수전에도 얼마든지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륙 후 사천을 벗어나 남해 해상까지 10여 분 비행하는 동안의 느낌은 버스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조종사는 남해 창선도 산 능선에서 약한 강도의 전술 비행을 시연했다. 산 능선을 넘을 때마다 참수리는 '바이킹' 놀이기구를 탄 듯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했지만, 기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김찬동 조종사는 "능동형 진동 저감장치를 탑재해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천=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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