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겨울엔 흰눈, 여름엔 흰꽃… 해발 1300m 산에 들인 인공 낙원

중앙일보

입력

지금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는 꽃 천지다. 지난 11일 샤스타데이지꽃이 가장 많이 핀 제우스3 슬로프에서 촬영했다.

지금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는 꽃 천지다. 지난 11일 샤스타데이지꽃이 가장 많이 핀 제우스3 슬로프에서 촬영했다.

지난주부터 전국 각지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기나긴 여름을 어찌 견딜지 아찔하다. 벌써 강원도 고원 지대가 아른거린다. 무구한 바람이 불고 열대야 걱정 없는 강원도 정선 같은 곳 말이다. 정선에서 여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6~7월 스키장 슬로프를 뒤덮는 샤스타데이지 군락을 감상하고, 옛날 탄광과 탄광을 이었던 해발 1100m 숲길을 걸으면 스위스 알프스가 부럽지 않다. 정선에는 대형 리조트만 있는 건 아니다. 5월 19일 정선군 고한읍 주민이 만든 마을호텔도 흥미롭다.

설원처럼 눈부신 꽃밭

“눈 없는 슬로프를 어떻게 활용할까.”
전국 스키장은 겨울이 지나면 같은 고민에 빠진다. 루지 같은 놀이기구나 양떼목장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슬로프는 자체로 훌륭한 놀이터다. 여름이면 온갖 꽃이 자라기 때문이다. 아예 슬로프를 꽃밭으로 가꾸는 스키장도 많다.

하이원리조트는 국내 스키장 중 세번째로 크다. 슬로프를 걸어다니며 꽃을 감상하기엔 너무 넓다. 그래서 선보인 게 카트투어다. 숲 해설가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카트를 몰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이원리조트는 국내 스키장 중 세번째로 크다. 슬로프를 걸어다니며 꽃을 감상하기엔 너무 넓다. 그래서 선보인 게 카트투어다. 숲 해설가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카트를 몰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지금 가장 화려한 스키장 꽃밭을 보려면 강원도 정선으로 가야 한다. 하이원리조트는 스키장을 연 2006년부터 슬로프 녹화사업을 벌였다. 규모가 압도적이다. 18개 슬로프, 약 85만㎡ 면적에 식물 40여 종을 파종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약 30억원을 썼다고 한다.

지난 11일 하이원리조트를 찾았다. 스키 하우스에서 꽃이 가장 많이 피었다는 ‘밸리 허브’까지 걸어가긴 멀었다. 카트 투어를 이용했다. 카트를 타고 가이드와 함께 50분간 꽃밭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슬로프는 그야말로 꽃 천지였다. 숲 해설가 자격증이 있는 한세은 과장이 카트를 몰며 설명했다. “샤스타데이지, 루피너스가 가장 많지만 쥐오줌풀, 수염패랭이 같은 야생화도 아주 예뻐요. 백운산에 많이 사는 개다래나무, 함박꽃나무도 하나둘 꽃이 피고 있어요.”

슬로프를 뒤덮은 건 샤스타데이지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야생화도 많다. 사진은 수염패랭이꽃.

슬로프를 뒤덮은 건 샤스타데이지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야생화도 많다. 사진은 수염패랭이꽃.

밸리 허브에 도착해 제우스3 슬로프를 내려다봤다. 1.8㎞에 이르는 슬로프를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뒤덮었다. 겨울 설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스키장이 숨겨둔 숲길

카트 투어는 어린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다. 슬로프 경사가 가파르고 숙소에서 거리도 멀어 누구나 이용한다. 그러나 너무 편해서 아쉬울 수 있다. 적당히 땀을 흘리며 깊은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시고 싶다면 ‘하늘길’을 걸으면 된다.

하늘길 '고원숲길'의 종착지인 도롱이연못. 1970년대 탄광 때문에 지반이 침하하면서 생겨났다. 광부의 아내들이 여기서 남편의 안전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늘길 '고원숲길'의 종착지인 도롱이연못. 1970년대 탄광 때문에 지반이 침하하면서 생겨났다. 광부의 아내들이 여기서 남편의 안전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늘길은 하이원리조트 안에 조성된 걷기여행 길이다. 모두 4개 길, 10개 코스로 이뤄졌다. 전체 길이는 33.2㎞다. 산책하듯 걷는 1~2㎞ 코스도 있고, 스키장을 에두르는 둘레길과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1426m)까지 이어진 등산로도 있다.

고원숲길에서 본 요강나물 꽃. 한국 자생종으로 '선종동굴'이라고도 한다.

고원숲길에서 본 요강나물 꽃. 한국 자생종으로 '선종동굴'이라고도 한다.

여름엔 역시 시원한 원시림이 좋다. ‘고원 숲길(1.5㎞)’을 걷기 위해 곤돌라를 타고 하이원 탑으로 이동했다. 이날 정선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했다. 그러나 해발 1340m 세상은 서늘했다. 하이원 탑에서 도롱이연못까지 이어진 숲길은 햇볕 한 점 들지 않았다. 숲속엔 요강나물 같은 희귀 야생화와 우람한 자작나무가 살고 있었다. 도롱이연못은 전날 내린 비로 모처럼 수량이 풍부했다. 맑은 연못에 낙엽송과 개다래나무, 뭉게구름이 어른거렸다.

운탄고도는 80년대까지 석탄을 실은 화물차가 다니던 길이다. 지금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근사한 트레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운탄고도는 80년대까지 석탄을 실은 화물차가 다니던 길이다. 지금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근사한 트레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도롱이연못 앞으로 지나는 운탄고도(5㎞)도 걸었다. 1980년대까지 화물차가 석탄을 실어나르던 도로였는데 지금은 명품 걷기여행 길로 인기가 높다. 해발 1177m에 자리한 탄광 ‘1177갱’이 보였다. 폐쇄된 갱 입구에 광부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너울거렸다.

호텔로 거듭난 골목

정선에는 운탄고도만큼 재미난 길이 또 있다. 이번엔 산길이 아니라 골목길이다. 정선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고한읍 고한18리, ‘마을호텔 18번가’ 이야기다. 골목이 호텔이 됐다니 어리둥절했는데 가 보고서야 이해했다.

정선 고한역 인근, 고한18리는 최근 '마을호텔18번가'로 거듭났다. 주민들이 쓰레기 나뒹굴던 골목을 예쁘장한 동화 같은 마을로 가꿨다.

정선 고한역 인근, 고한18리는 최근 '마을호텔18번가'로 거듭났다. 주민들이 쓰레기 나뒹굴던 골목을 예쁘장한 동화 같은 마을로 가꿨다.

이태 전까지 고한18리는 빈집이 태반이었다. 쓰레기 나뒹굴던 골목에 고한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사진관과 디자인 회사를 열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마을을 살리자며 주민과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정선군과 고한읍의 도움을 끌어냈고,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에도 선정됐다.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빈집을 활용해 카페와 마을회관을 꾸몄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집 앞에 화단을 가꾸고 수시로 골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마을이 단정해지자 쓰레기 무단 투기, 불법 주차 같은 문제가 해결됐다. 깨끗해진 골목에서 야외공연과 조촐한 정원박람회도 열었다. 5월 19일에는 마을재생사업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객실 3개짜리 호텔이 개장했다.

고한18리 주민들은 열심히 골목을 청소하고 집앞 화단을 가꾼다. 마을 길이 깨끗해지면서 쓰레기 무단 투기, 불법 주차 문제도 해결됐다.

고한18리 주민들은 열심히 골목을 청소하고 집앞 화단을 가꾼다. 마을 길이 깨끗해지면서 쓰레기 무단 투기, 불법 주차 문제도 해결됐다.

호텔이라지만 객실 규모는 민박집 수준이다. 대신 마을 전체가 호텔 기능을 분담한다. 조식은 카페에서 먹고 마을회관을 비즈니스센터로 활용하는 식이다. 골목 탐방, 조명 만들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마을호텔 18번가 김진용 상임이사는 “코로나 여파에도 주말은 계속 만실”이라며 “스냅숏 촬영, 마을 식당 할인 같은 투숙객 혜택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행정보

서울시청에서 정선 고한읍까지는 자동차로 220㎞, 약 3시간 걸린다. 무궁화호를 타면 청량리역~고한역 3시간 30분 소요. 하이원 리조트 객실은 현재 팰리스호텔, 마운틴 콘도만 이용할 수 있다. 가이드 카트 투어는 5인승 3만5000원(주중 기준), 8인승 6만원. 곤돌라 탑승권은 현재 50% 할인 중이다. 어른 7500원. 마을호텔18번가 숙박료는 9만~15만원.

 정선=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