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매 '위험한 패스트트랙'···협상달인 트럼프 움직일까

중앙일보

입력 2020.06.18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6일 남북 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17일 남북 군사합의 파기 수순에 들어갔다. 되돌아갈 다리를 부숴버리는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란 평가다.

같은 벼랑 끝 전술이라도 강도와 속도 면에서 예전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 출신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정일 정권 시절부터 북한은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벼랑 끝 진술'을 썼는데, 지금 김정은 남매는 협상의 시간조차 없이 한번 공개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북한판 패스트트랙 전술'을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식의 전술에 대해 태 의원은 "대한민국을 흔들어 미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北 벼랑 끝전술, 늘 위기상황으로 이어져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010년 10월 후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010년 10월 후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있다. [AP=연합뉴스]

북한판 벼랑 끝 전술의 원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다. 1990년대 들어 미소 냉전 당시 쓰였던 방식을 차용해 위기상황을 조성했다.

1993년 1차 핵위기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시작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그해 6월 북·미 고위급회담 과정에서도 남한의 부정적인 반응을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북·미 협상은 김영삼 정부의 반대에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북한은 1994년 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을 추출하는 강수를 뒀다. 전쟁위기 상황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가까스로 화해 무드로 돌아섰다. 그해 10월 21일 '북·미 제네바 합의'가 채택됐다. 북한의 핵 활동 동결, 미·북관계 개선,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등이 합의 사항에 담겼다.

북한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벼랑 끝 전술로 한반도를 격랑에 빠뜨렸다. 2002년 10월 2차 핵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 계획을 입수한 미국이 북한에 제공하던 중유 공급을 중단하자 북한은 핵 동결 조치를 해제하고 IAEA 사찰관을 추방했다. 이듬해 초 NPT를 탈퇴하고 시험용 원자로 가동에 들어간 것은 1차 핵위기 때의 '데자뷔'였다.

조금씩 양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핵개발→미·북 대립→미사일 시험발사 등 긴장 강화→ 대화 재개→핵불능화 조치 및 경제지원 합의' 패턴으로 요약할 수 있는 셈이다.

김정은 정권과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북·미 관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행정부의 출현으로 기존의 벼랑 끝 전술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더 극단적인 대치와 극단적인 화해 무드가 연출됐다.

김정은 정권은 출범 이후 2012년 12월 장거리 로켓은하 3호 2호기를 발사하고,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단행해 역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강화된 핵도발은 중국까지 대북 제재에 동참하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위기는 2016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고조됐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핵 버튼'을 자랑하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전임자인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취하며 북한의 도발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양측의 '치킨 게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열리며 드라마틱한 화해무드로 진입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이 사실상 결렬되면서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트럼프에 통할까…"본게임은 미 대선 전후"  

지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_이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_이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의 이번 도발에 '벼랑 끝 전술'은 또 한 번 진화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상대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벼랑 끝 전술'을 즐겨 쓰는 협상가 스타일이다. 2019년 전 세계가 주목한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게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는 일단 '무반응' 전략을 쓰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에 하등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을 움직이는 게 북한의 목적이라면 결국 본격적인 게임도 미국 대선을 전후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사이 북한이 만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재개할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다만 북한도 무조건 강공만 펼치기엔 부담이 있다.

"반복되는 전술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회복하기 어려운 정도로 떨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대북 강경 정책에 힘을 실리기 때문에 최종적 피해는 북한 자신이 볼 것"이라는 게 벼랑 끝 전술에 대한 통일부의 공식 평가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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