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北 도발에도 "종전선언" "금강산 재개" 한가한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2020.06.18 05:00

“어떤 일을 추진할 땐 선후(先後)·경중(輕重)·완급(緩急)을 잘 가려야 한다”는 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랜 정치·정책 철학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와 관련한 집권여당 정치인들의 언어에선 이 같은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5일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 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종전선언은 평화체제에서 필요한 게 아니라 전쟁 상태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썼다. 전날(16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파괴한 행위에 대한 반응이었다. 앞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등에 군부대를 다시 주둔하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하겠다는 내용의 대변인 입장문을 내기도 한 터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2면에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을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2면에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을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그뿐만 아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반도의 주인끼리, 민족자주의 원칙으로’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다. 김 의원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군부대 투입도 조만간 단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말로 북한을 설득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신속한 평화 행동에 돌입할 때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바로 개성공단 문을 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미 군을 투입하겠다고 천명한 마당에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반(反)하는 조처부터 “먼저 과감히 저지르자”(김 의원)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라는 표현은 “북남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내용을 연상케 했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전날 북한의 연락사무소 ‘완파’ 소식에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해 논란을 자초했던 민주당 소속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식 언론 기자회견이 아닌데 이런 내용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의 5선 의원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이자, 언필칭 외교안보 전문가로 사려 깊은 언행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그는 사과 없이 언론 탓을 했다.

송 위원장은 “(북한의 도발이)촉발된 게 대북전단 문제다. (…) 북이라는 사회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고 존엄에 대한 어떤 존중이 사회체제·헌법체제화 돼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격과 모욕이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방향이 매우 다르다”라고도 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대북전단은 북한이 도발하기 위한 빌미였을 뿐”(재선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그의 손가락은 오직 ‘삐라’만 가리켰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을 듣고 자리를 뜨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을 듣고 자리를 뜨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경협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계속되는 막말 비난, 몽니, 오버 액션 쇼에 언론과 정치권 안절부절 호들갑 가관이다. 이런 모습이 김여정의 작전에 놀아나는 것”이라고도 썼다. 정작 ‘안절부절’은 북한의 도발 소식이 전해진 뒤 TV로 생중계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얼굴이었고, ‘호들갑’은 김여정의 ‘삐라 담화’ 이후 쏟아진 민주당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안’이 아니었을까.

현 여권의 주류가 북한을 바라볼 때 선호하는 이른바 ‘내재적 관점’은 북한의 속사정을 정확히 알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지피지기’이지, 북한의 ‘나쁜 행동’을 무조건 이해하고 맞춰주자는 뜻은 아닐 게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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