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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싫어 도망친 中농민공, 코로나가 부른 서글픈 ‘고향의 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월.

지난 10일 중국 쓰촨성 청두의 한 곡물창고에서 노동자들이 곡물을 옮기고 있다. [신화망 캡처]

지난 10일 중국 쓰촨성 청두의 한 곡물창고에서 노동자들이 곡물을 옮기고 있다. [신화망 캡처]

마을에서 예전에 볼 수 없던 현상이 나타난 건 이때부터였다. 중국 허난(河南)성 주마디엔(駐馬店)시. 여느 농촌 마을처럼 많은 젊은이가 타향살이 중이었다. 일자리를 구해 도시에 나가 살았다.

그러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본격화된 건 4월이다. 그리고 농사일을 하고 있다. 농장주에 고용돼 밀 수확 등을 한다. 과거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이다.

중국 허난성 주마디엔시에서 한 인부가 밀을 고르고 있다.[NPR 캡처]

중국 허난성 주마디엔시에서 한 인부가 밀을 고르고 있다.[NPR 캡처]

하지만 이젠 묵묵히 일한다. 광둥성 선전의 공장이나 상하이의 음식점에서 일하며 받았던 급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일당인데도 말이다. 아니 ‘감사한 마음으로 한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이거라도 안 하면 꼼짝없이 백수 신세이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조차 못 구한 사람도 많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이 살펴본 중국 농촌의 풍경이다. 코로나19가 도시에서 일하던 농민공(農民工)의 처지를 바꿔놨다. 농민공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 빈곤층 노동자를 말한다.

살기 위해 고향 찾은 농민공…농촌이 실업 충격 완화 스펀지

허난성 주마디엔 시에 밀밭 옆에 있는 땅콩밭의 모습. 수천만 개의 도시 및 공장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많은 농민공이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NPR 캡처]

허난성 주마디엔 시에 밀밭 옆에 있는 땅콩밭의 모습. 수천만 개의 도시 및 공장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많은 농민공이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NPR 캡처]

NPR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수천만 개의 도시 및 공장 일자리가 증발한 가운데 농촌이 그나마 농민공의 충격을 완화하는 스펀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도시에서 쫓겨난 농민공들은 고향에서 임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육지책으로 고향에서 얻은 일자리도 여의치는 않다. 주마디엔 주민 자오씨는 NPR에 “딸은 다니던 전자 공장이 문을 닫아 밀 농사일로 돈을 벌고 있다”며 “하지만 가뭄으로 인해 올해 수확량이 예전보다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2월 말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을 지나 하락세를 보이던 때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시와 후베이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봉쇄가 서서히 해제됐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주마디엔시는 이때만 해도 춘제(春節)를 맞아 고향에 온 뒤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농민공들을 돌려보내는데 적극적이었다. 전세 버스를 동원해 농민공 수백명을 약 1300㎞나 떨어진 광둥성 전자 공장으로 실어 나르기까지 했다.

4월 말 중국 광저우시의 한 버스정류장의 모습. 다른 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실직한 뒤 집안 살림과 작업도구 등을 들고 광저우를 떠나기 위해 줄을 섰다. [SCMP 캡처]

4월 말 중국 광저우시의 한 버스정류장의 모습. 다른 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실직한 뒤 집안 살림과 작업도구 등을 들고 광저우를 떠나기 위해 줄을 섰다. [SCMP 캡처]

하지만 이들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전국 봉쇄(셧다운) 충격 여파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1~2월 두 달 동안 강제적으로 취한 정책 말이다. 침체한 내수는 봉쇄가 해제된 뒤에도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팬데믹(전염병 세계 대유행) 상황에서 원자재 수입은 여의치 않고, 수출은 더 암울하다. 농민공의 일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중국 인민대학교가 공동으로 중국 7개 성 약 70만 명의 농민공을 조사했다. 지난해 일을 하던 노동자 중 절반이 4월 말엔 실업자 신세였다.

지난 3월 중국 충칭시에서 여성들이 버스 안에서 구직 관련 안내 홍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망 캡처]

지난 3월 중국 충칭시에서 여성들이 버스 안에서 구직 관련 안내 홍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망 캡처]

국가 도움도 받지 못한다. 대부분 임시 계약직인 '이주노동자' 신분이라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NPR은 “현재 중국의 실업자 중 약 10%만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고용주가 1년 이상 고용보험을 부담할 수 있는 화이트칼라 직종이어야 가능하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3월 말까지 실업급여를 받은 중국인은 약 230만 명”이라며 “이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천만 명 중 극히 일부”라고 전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 매체 제멘(界面)에 따르면 천즈강(陳志剛) 저장(浙江)대 공공관리학원 교수는 지난 6일 온라인 강연을 통해 “전체 농민공의 약 10%가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며 “농민공의 수가 최대 3억 명에 이르는 거로 볼 때 약 25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층 폭등 안 돼…발등의 불 떨어진 中 공산당

[중국청년보 캡처]

[중국청년보 캡처]

당장 중국 지도부엔 실업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인구의 절반인 약 6억명 월 수입은 1000위안(약 17만 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위안으로는 중간 규모 도시(인구 50만∼100만 명)에서 집세를 내기조차 어렵다”며 “코로나19 충격으로 빈곤층이 다시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했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이 가진 정당성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충격은 이를 위협하고 있다. 내수 중심 경제를 선언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선 시진핑 주석. 그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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