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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왕회장 소떼 방북 22주년날 폭파" 현대아산 망연자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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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대북사업으로 속앓이를 해 온 현대아산의 근심은 더 깊어지게 됐다. 17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뉴스1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대북사업으로 속앓이를 해 온 현대아산의 근심은 더 깊어지게 됐다. 17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뉴스1

“하필이면 16일에….”
지난 16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이 공개되자 현대아산 직원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은 2018년 9월 현대아산이 정부 지원금 100억원을 받아 직접 리모델링한 건물이었다.

현대아산은 지난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철수하기 전까지는 연락사무소 운영·관리를 맡아왔다. 더군다나 16일은 현대그룹 입장에선 22년 전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찾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별 성과 없이 끝나면서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북사업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건 아니지만,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 측은 “공식 입장을 낼 상황은 아니지만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하게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1998년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고 있다. 사진 현대그룹

1998년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고 있다. 사진 현대그룹

최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 경영진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북한군 총참모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특구에 군 병력을 다시 배치할 것을 17일 천명하면서 현대아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시찰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 관련 논의는 올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된 상태다.

현대아산 측은 당분간 남북 교류사업은 재개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강경 기류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은 오는 8월 4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17주기 행사도 치르기 어렵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매년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과 금강산에서 추모행사를 가져 왔는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엔 북한이 ‘내부 사정’을 들어 공동 추모행사를 열지 못하겠다고 알려와 방북하지 못했다.

현대아산은 2000년 금강산 토지 이용권과 북한 사회기반시설(SOC) 사업권 등 이른바 7대 독점사업권을 북한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면서 수익은커녕 투자금 회수조차 못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금까지 금강산관광에 9229억원, 개성공단에 6021억원 등 총 1조5250억원을 투자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개성공단 사업도 2016년 북한 핵실험 등으로 중단됐다. 현대그룹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대북사업 재개를 준비해 왔지만 당분간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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