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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팽'당하느냐 '팽'선택하느냐…인생3막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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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1)

중국 장가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여행지 중 하나이다. 장가계는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됐을 정도로,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비현실적 풍광을 자랑하는 중국 최고의 풍경구이다. 그러나 장가계가 기막힌 풍경을 자랑하는 관광지이지 우리가 익히 사용하는 토사구팽의 교훈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잘 알다시피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을 끝낸 사냥꾼은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필요가 없어진 사람은 제거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 토사구팽의 어원은 장가계의 시작이 됐던 시대보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추시대 월나라 구천은 와신상담 끝에 오나라 부차를 이긴 후 승리의 공을 높게 사 범려와 문종에게 큰 상을 내린다. 그러나 구천의 성품을 안 범려는 월나라를 탈출했고 함께 공을 세웠던 문종에게 편지를 써서 토사구팽의 예를 들어 도망을 권유한 일에서 출발했다. 한참 뒤,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이긴 후 그 공을 치하하며 공신 장량에게 큰 직책을 하사했는데 장량은 과거 월나라 범려와 문종의 토사구팽의 예를 마음 깊이 새기며 지금의 계곡으로 숨어들었고, 그 이후 장씨 집안들이 집성촌을 이뤄 오늘에 이르게 돼 장가계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장가계는 그 절경뿐만 아니라 토사구팽의 큰 교훈을 주는 여행지이다.

토사구팽은 일반적으로 배은망덕의 의미를 담아 인간관계에 있어 비난받아 마땅한 처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토사구팽이 반드시 부정적 측면만 있는가? 나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토사구팽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면 해가 아니라 득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바로, 달걀이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의 손에 의해 깨지면 계란프라이가 된다는 비유를 들어서이다.

인생후반부 어디로 갈 것인가는 남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한다. [사진 한익종]

인생후반부 어디로 갈 것인가는 남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한다. [사진 한익종]

대학시절 경제학원론 시간에 케인즈의 4cycle이론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다. 케인즈는 경제를 네가지 국면이 반복된다고 밝혔는데 바로 ‘불황기-회복기-호황기-쇠퇴기’라는 국면을 반복한다는 이론인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이 이론이 경제에만 국한된 이론이 아니라고 봤다.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절정에 이르면 내려가야 한다.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고 할 때 이제는 내리막이 있을 뿐인데, 남의 손에 의해 끌려 내려오든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내려오든지 하는 두 선택지에서 어떤 토사구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10여년 전, 만 50세가 되던 해 인생 2막인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던 시간이 생각난다. 지금이 내 직장생활의 정점이라는 생각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직서를 냈다. 남의 손에 의해 토사구팽당하지 말고 나 스스로 내려오자는 생각이었다. 마치 월나라의 범려와 한나라의 장량처럼. 그런 생각은 사실 입사 초기부터 가졌었다.

신입사원 시절이던 1980년대 중후반으로 기억된다. 어느 TV 방송국에서 미니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제목이 ‘달리는 거리’였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잘 나가던 영업부서장이 임원 발탁에서 탈락한 후 지방 좌천으로 홀로 생활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는다. 과거 본사시절에는 자신이 회사에서 제일 똑똑하고 가장 열심히 근무하는 사람으로 기고만장했었는데 지방 좌천 이후엔 부하직원들과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하는 자세를 택하게 된다. 그 결과 전국 최우수영업부서를 도맡아 차지하게 되고 2년 후 본사 영업총괄 임원으로 승진하게 된다. 본사에 처음 출근한 날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명패를 쓰다듬으며 품 안에서 사직서를 꺼내 책상에 놓고 뒤돌아서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 드라마를 통해 내가 느낀 두 가지 점은 첫째, 성공하는 삶도 결국은 `함께’라는 태도 때문이라는 것과 둘째, 떠날 때를 잘 알고 스스로 토사구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신의 물러남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고, 그 원망으로 인생후반부를 괴롭게 지내는 인사들을 수없이 목격한다. 대부분의 경우 남에 의해 토사구팽당했다는 생각과 자신만이 모든 걸 누려야 한다는 욕심이 낳은 결과이다.

어르신보호시설에서 재능기부하고 있는 모습. 보호시설의 노인들 대부분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괴로워 한다.

어르신보호시설에서 재능기부하고 있는 모습. 보호시설의 노인들 대부분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괴로워 한다.

어느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소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동료들과 심지어는 보호사들과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매사가 불만인 양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한 노인이 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5남매를 키우며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켰고 어느 정도의 재산도 가진 부유한 노후를 지내던 노인이었단다. 어느 날 자신에게 정성으로 대해 주는 요양보호사에게 속 내를 터놓은 바로는 자신이 어떻게 자식들을 키웠으며 재산도 적당히 나눠 줘 분가시켰는데 인제 와서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서글픔 때문이었단다. 바로 토사구팽당했다는 배신감에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는 사연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내려놓지 않고 남의 손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비단 그 노인의 경우뿐이랴. 오래전 미국에 있는 친척이 눈물을 글썽이며 한탄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자식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자신들이 잘 나가니까 인제 와서 부모를 홀대한다는 사연이었다. 안타깝기는 했지만 내심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니 하세요. 누구든지 토사구팽을 피할 수는 없어요”라고.

누구든지 토사구팽의 사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지 스스로 선택하느냐, 남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재산이나 명예, 지위, 권력이 있을 때는 주위에 사람이 모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평생 혼자 누리며 살 사람은 거의 없다. 부모자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사구팽의 과정은 인간의 일생 그 자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할 사자성어일 것 같다. 남에 의해 ‘팽’당했다고 원망하며 인생후반부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내려놓고 이웃과 사회와 함께 하는 삶을 살 것인가의 결과만 다를 뿐이다. 토사구팽을 마지막 순간까지 당하지 않고 싶은가? 스스로 토사구팽을 선택하라. 기분 좋게 토사구팽을 선택할 유일한 방편은 ‘나’만이 아닌 ‘함께’ 한다는 자세이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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