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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전 세계가 ‘삼성 노조’ 지켜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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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에 대해 최근 대국민 사과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의 삼성은 82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미래”였다. 삼성그룹은 1938년 정미소와 양조장으로 시작해 50년대 설탕과 옷감, 70년대 석유화학·가전제품, 80년대 반도체를 거쳐 지금은 바이오산업에 도전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이런 역사보다는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대목에서 귀가 번쩍 뜨였던 모양이다. 주요 외신도 경영권 승계 포기에 주목했다.

오너 경영 리더십 점차 약화하고 #노조의 힘 커지면 반도체 위험해 #외국 기업 콧노래 부를 일 없어야

하지만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부회장의 대물림 포기 약속이 20~30년 후 과연 지켜질 수 있겠느냐며 시민단체는 의심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노파심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삼성 주요 계열사 지분이 외국인에게 많이 분산돼 있다. 그만큼 경영권 대물림이 쉽지 않아졌다. 지금은 법률의 미비나 편법을 통한 우회로도 여의치 않다. 결정적인 걸림돌은 65%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문턱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논란 자체가 세금 부담의 적정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세금의 강’을 건너기 어려워졌다.

결국 한국에서도 미국·유럽·일본의 재벌들처럼 창업 4~5대로 내려가면 소유·경영의 분리가 불가피해진다. 그래서 걱정이다. 오너 경영은 한국 기업이 급성장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비단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포드·카네기·록펠러도 오너 경영으로 성장했고, 유럽의 많은 기업은 지금도 오너 경영이 대세다. 독일 경제의 견인차인 히든챔피언 기업들도 거의 70%가 오너 경영 체제다. 장기 비전과 일관된 리더십으로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기업 덩치가 커지면 소유·경영이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한국이 다른 점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강성 노조가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민주노총의 공격적 노동운동은 기업 경영을 불안에 떨게 한다. 특히 노조가 없던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투쟁 방식을 지도해 가며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유도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최근에는 건설현장 일용직도 노동단체 소속이 아니면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노동단체의 세력 확장이 가열되면서다.

삼성에서도 양대 노총의 세력 확장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디스플레이·SDI·화재 등 한국노총 산하 6개 노조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직후 ‘삼성그룹노조연대’ 출범을 알렸다. 삼성전자와 디스플레이 노조는 최근 사측에 상견례 차원의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영진은 소극적이다. 아니 여력이 없다. 미·중 기술전쟁에 따른 반도체 초격차 유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동안 삼성 내 노조 역할을 대신해 온 노사협의회가 잘 운영되고 있어서 시급성도 없다. 시스템의 삼성인 만큼 대다수 현장 직원이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도 변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노동3권을 보장한다”고 약속한 만큼, 노조가 차츰 목소리를 높이면 삼성은 전에 없던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공산이 크다. 이런 우려는 노동단체의 반기업적 투쟁 관행에서 비롯된다. 특히 민주노총은 투자와 인력 배치 등 경영 방식에까지 깊숙이 개입해 왔다. 현대차가 생산라인을 조정하려고 해도 노조의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이다.

삼성마저 이렇게 돼선 안 된다. 오너 리더십이 옅어질수록 계열사 간 협력이 느슨해지고 단기 성과에 급급한 전문 경영인의 모럴 해저드 가능성에 노조 리스크까지 겹치면 삼성의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투쟁적 노동단체가 삼성 노조를 좌우한다면 ‘반도체 코리아’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 노조가 대화를 중시하는 한국노총을 선택한 것은 다행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전 세계가 삼성의 노조를 지켜볼 것이다. 삼성 노조마저 투쟁적으로 가면 한국의 반도체를 공략하는 미국·일본·중국 기업으로선 콧노래를 부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