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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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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1988년 6월 20일. 역사적 원구성이 마무리된 날이다. 여·야 4당은 16개 상임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의석수 비율대로 ‘7(민주정의당 125석)·4(평화민주당 70석)·3(통일민주당 59석)·2(신민주공화당 35석)’의 황금비율로 나눠가졌다. 그전까지 과반 여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거나 표결로 모든 자리를 싹쓸이하던 관행과 작별한 날이다. 이 또한 그 해 4·26 총선으로 펼쳐진 여소야대의 새로운 힘의 논리가 반영된 결과지만 이날에 다다르는 과정은 2020년 6월15일까지의 경로와는 크게 달랐다.

당시엔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는 아니었지만 87년 개헌 이후 밀려있던 정치적 현안은 무거웠다. 개원 전부터 ▶5공비리특위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위 설치 문제 ▶청문회 도입 등 국회법 개정 문제 ▶시국사범 석방 문제 등으로 여·야의 기싸움이 치열했다. 원구성 협상도 민정당이 애초 평민당에 농수산위원장을 내주기로 했던 입장을 뒤집으면서 교착상태였다.

노트북을 열며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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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한 갈등에서 ‘상임위원장 합의 배분’이라는 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관행을 끌어낸 것은 정당과 그 리더들이 보여준 일련의 절제와 타협이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3金’은 5월 28일 영수회담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큰 틀을 정했고, 여야 협상주체들은 빈손으로 돌아서는 날도 개원 디데이만큼은 새로 합의했다. 왜소해진 여당은 처음부터 ‘싹쓸이의 추억’을 되뇌이지 않았고 야당은 국정운영의 축이 되는 법사위·외통위·내무위·재무위 등을 탐내지 않았다. 결정적 실마리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큰 패를 하나 내려놓자 풀렸다. 그는 원구성 협상이 막바지 고비였던 6월 16일 “이번 국회소집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적은 5개 특위를 구성해 제5공화국 청산작업을 벌이는 것”이라며 “특위구성에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농림수산위원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흔적을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선 찾아볼 수 없다. 두 원내대표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지 결단하지 못했다. 그저 당내 강경파들의 주문을 충실히 대변하는 ‘모 아니면 도’식의 접촉은 협상이라고 하기도 어색했다. 33년을 뒤로 건너 뛰는 새로운 관행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여·야는 국민과 약속한 국회 운영의 룰을 짓밟았다. 야당은 국회법에 적혀있는 모든 법정 시한을 지키지 않았고, 여당은 원구성 관련 규정의 ‘협의’라는 말의 무게를 경시했다. 21대 국회 4년간 국회법이 얼마나 너덜너덜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치에선 법보다 무서운게 관행이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