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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사위를 사법 통제의 도구로 개악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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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거대 여당 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을 배제한 채 단독으로 법사위를 차지한 지 하루 만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발언이 등장했다. 법사위 소속 김종민 의원은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수사 과정 의혹을 둘러싼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보에 대해 “윤 총장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조사한다가 중요하다”며 법사위에서 이 의혹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법사위를 장악하자마자 나온 일성이 현 정권의 눈엣가시인 윤 총장을 정면으로 조준했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단독으로 법사위원장 표결을 강행해 놓고 정작 욕심은 딴 데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법사위를 사법 통제의 도구로 사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위원장 선출 강행 하루 만에 윤석열 겨낭 발언 #‘상원 상임위’ 도구인 자구·체계 심사권 없애야

민주당은 박주민·송기헌·김종민 의원 등 조국 사태와 윤석열 검찰 국감 국면에서 ‘주포’ 역할을 했던 종전 멤버에 김남국·김용민 의원 등 친(親)조국 변호사 출신 인사들을 법사위에 포진시켰다. 위원장에는 법조인 출신이 아닌 친문 중진으로 이해찬 당권파의 핵심인 윤호중 의원을 앉혔다. 윤 의원은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18개 상임위 독식론을 주장한 학생운동권 출신의 강경파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공격수’를 전면에 배치해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여당의 의지가 읽힌다. 이러니 민주당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나 ‘유재수 감찰 중단 의혹 사건’ 등의 수사 여파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사위 장악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런 일이 절대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힘을 불리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법사위의 자구(字句)와 체계 심사권을 없애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가 검토를 마친 법률안에 대해 자구와 체계에 관한 심사권을 갖는다. 이는 법사위원장과 위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마음대로 본회의로 가는 통로에서 다른 상임위가 마련한 법률안의 자구와 체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모든 상임위가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가진다는 명제에도 맞지 않는다. 법사위가 ‘국회의 상원’이란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법률의 자구와 체계를 심사하는 일은 한편으로 보면 단순한 검토 작업 같지만 따져 보면 입법 의도가 훼손되거나 법률안 처리의 의도적 지연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제 국회 법사위 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통합당은 전원 불참했고 민주당 단독 회의였다. 국회 개원부터 상임위원장 선출과 회의까지 ‘단독’의 연속이다. 협치 없이 독주만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놓쳤던 ‘국민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여권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더욱이 독주도 모자라 장악한 법사위를 사법 통제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면 나중에 어떤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지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