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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경고 하나씩 현실로…"軍에 대적행동권" 발언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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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2018년 맺어진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도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공언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도발이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는 의미다.

김여정 예고 하나하나 실현해가는 北 #군사 도발 이어질 가능성 높아 #'군사합의' 파기 상징적 조치 나설 듯

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군 당국자는 이날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조치에 대해 “공식 입장은 통일부에서 내놓을 것”이라면서도 “군 내부적으로는 9·19 군사분야 합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관할 지역에 위치한 구조물 철거를 9·19 군사분야 합의에서 금지한 ‘상대를 겨냥한 적대행위’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엔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무력 사용이 없었다는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조치로 9·19 군사분야 합의가 형해화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토지는 북한에서 제공했지만 한국 자본으로 지어진 연락사무소 건물은 한국 재산”이라며 “우리 재산이 피해를 입었으므로 북한의 적대 행위이자 9·19 군사분야 합의 위반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조치가 4·27 판문점 선언 파기로 읽힐 수 있는 만큼 그 이행 합의인 9·19 군사분야 합의도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북한은 군사적 행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대북전단 관련 첫 담화에서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13일 담화에서는 “우리는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다음번 (남측을 향한)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총참모부는 이날 김 제1부부장의 발언을 더욱 구체화해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하여 전선을 요새화하며 대남 군사적 경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행동 방안을 연구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하였다”고 밝혔다.

북한의 예고를 종합하면 남북간 연락 통신선 단절,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앞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의 군사화, 9·19 군사분야 합의 파기로 나아간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엄포를 가볍게 여길 수 없게 됐다”며 “합의 파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9·19 군사분야 합의 후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한 개머리해안 해안포의 포문이 닫혀있다. [국회사진기자단]

9·19 군사분야 합의 후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한 개머리해안 해안포의 포문이 닫혀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럴 경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를 개방하거나 포사격 훈련을 감행하는 등 9·19 군사분야 합의에 명시된 금지 조항을 대놓고 위반하는 방식이 우선 거론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이번 사태에서 북한은 ‘예고 후 행동’이라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충격 효과를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자신들이 받을 피해는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반면 인명 피해 등 당장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적 행동의 행사권을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줄 것”이라는 김 부부장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에서 군을 전면에 내세워 치명타를 입힌 전례가 있다.

박원곤 교수는 “남북 관계를 대적 관계로 갖고 가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뚜렷하다”며 “9·19 군사분야 합의 파기를 상징하는 강력한 조치로 곧바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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