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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화웨이 너무 얕봤나…5G 국제표준서 밀리자 '백기'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자국 기업의 중국 화웨이와 거래 금지 규정을 일부 완화했다. 화웨이를 제재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기술력을 앞세운 화웨이 주도의 5G(세대) 국제표준 설정에서 미국 기업이 소외되는 걸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화웨이 고사 작전’에 나섰던 미국 정부로서는 체면을 구긴 채 화웨이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화웨이 고사 작전을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 [AFP]

화웨이 고사 작전을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 [AFP]

미 상무부, 화웨이와 5G 기술 협력 허용  

15일 로이터통신 등은 미국 정부가 5G 네트워크 국제표준 설정에 자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화웨이와 협력하는 걸 허용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는 이미 이같은 내용의 규정 변경에 서명했고, 이르면 16일 연방관보에 공표할 예정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미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를 확인했다.

미국 내에서는 즉각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오미 윌슨 정보기술산업협의회(ITIC) 아시아정책담당은 “화웨이 제재로 미국 기업들이 의도치 않게 일부 기술표준 논의에서 밀려나 불이익을 받았다"며 "이번 조치로 미국이 5G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 기구에서 다시 경쟁력과 주도권을 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 제재하다 되려 미국 기업이 피해   

국제 통신업계에서는 “미국이 화웨이를 얕보다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규정 변경의 골자는 화웨이가 참여하는 5G 기술표준기구와 사업에 미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화웨이가 미 상무부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후 어쩔 수 없이 화웨이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화웨이가 5G 기술표준 논의를 주도하고, 미국 기업들이 밀려나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EPA]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EPA]

화웨이, 5G 표준 핵심 특허 보유 세계 1위 

특히 5G는 AI·빅데이터·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로 꼽힌다. 그런데 5G 기술을 주도하는 게 바로 화웨이다. 미국 기술조사업체인 그레이비서비스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유럽통신표준화기구(ETSI)에 제출된 5G 관련 표준기술특허(SEP)는 약 12만 건이다. 이 중 5G에 필수적인 핵심 표준 특허는 1658건인데, 화웨이가 302건(19%)으로 가장 많이 보유했다. 그다음 삼성전자(256건·15%), LG전자(228건·14%)·노키아(202건·12%) 순이다. 또 특허의 80%를 보유한 상위 ‘톱6’ 기업에 이름을 올린 미국 기업은 퀄컴(191건·11%)뿐이다. 표준 특허는 특정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술 특허다. 하나의 특허가 여러 나라에 등록되는 ‘패밀리 특허’ 역시 5G 분야에선 화웨이가 1위다. 화웨이의 기술 없이는 미국 기업이 5G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셈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화웨이, 특허 앞세워 국제표준 설정도 주도 

화웨이는 5G 특허를 바탕으로 국제표준 설정도 주도하고 있다. 스트래티지애널리스틱(SA)에 따르면, 이동통신 국제표준화 단체인 국제민간표준화기구(3GPP)의 5G 표준 정립에 대한 기여도 조사에서 화웨이는 지난해 최고 평점을 받았다. SA는 “표준화 정립에 대한 기여도가 5G 리더십의 핵심 지표”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에는 화웨이 주도로 유럽전기통신표준화기구와 중국광대역개발연합(BDA), 유럽 이동통신 업체들이 참여한 5G 네트워크 산업 협의체가 출범했다. 미국이 보란 듯 이 출범식은 화웨이의 안방인 중국 선전에서 개최됐다.

5G 표준서 소외되면 경제패권도 놓쳐     

결국, 미국의 이번 결정은 화웨이가 주도하는 5G 시장에서 미국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것이 곧 산업을 리드하는 것이고, 결국 경제 패권과 직결된다”며 “5G 분야와 마찬가지로 화웨이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의 IT,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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