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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뷔 '천만배우' 정진영 “발가벗겨진 느낌…후기 다 읽어”

중앙일보

입력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각본·연출을 맡아 데뷔한 정진영 감독의 촬영 현장 모습. 연기 경력 32년의 충무로 베테랑으로서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각본·연출을 맡아 데뷔한 정진영 감독의 촬영 현장 모습. 연기 경력 32년의 충무로 베테랑으로서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배우일 때랑 완전 달라요. 발가벗겨지는 느낌? 날 다 까발린 것 같아요. 제가 서투른 거야 각오한 건데, 배우‧스태프의 많은 양보와 지지 덕에 한 거라 그들에게 보람이 돼야 한단 게 저를 짓누르네요.”

"오래전부터 꿈…예술가로서 다시 도전" #조진웅 주연작 '사라진 시간' 18일 개봉 #"망하면 어때 싶었는데 관객 평가 두려워"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각본‧연출을 맡은 32년 경력 연기자 정진영(56)의 고백이다. 영화감독에 도전한 충무로 배우는 하정우‧유지태‧김윤석‧방은진 등 적지 않지만 알려진 급에선 정진영이 가장 늦깎이다. ‘왕의 남자’(2005) ‘국제시장’(2014) 등 주연작 두편이 ‘천만 영화’ 기록을 세운 베테랑 배우가 무엇이 아쉬웠던 걸까.

“어릴 적 꿈이 영화감독, 예술가였다. 연기도 예술이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가장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더라.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마침 애도 다 키웠는데 싶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 연극동아리 이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의 연출부 막내로 일한 것을 끝으로 묻어뒀던 꿈이 이렇게 살아났다.

영화 ‘사라진 시간’(18일 개봉)의 정진영 감독은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사라진 시간’(18일 개봉)의 정진영 감독은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진웅이 반한 시나리오…“일이 커졌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외지인 부부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이 의문의 화재사고를 당하자 수사에 나선 형사 형구(조진웅)가 어느 순간 자신의 현실이 증발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담았다. 미스터리 장르물처럼 보이지만 정 감독 스스로 “슬픈 코미디”라고 설명하듯 실제론 어떤 결론보다는 형구의 혼란 자체에 초점을 뒀다. ‘뫼비우스 띠’처럼 얽힌 두 세계의 종지부를 바란 관객들로선 엔딩 신에서 허탈감 혹은 ‘멘붕’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시작하고 갑자기 닫는 것’은 정진영 감독이 애초 원했던 구성이란다.

“쓰는 중에 이준익 감독이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충무로 선수들 얘기를 들으면 고치고 싶어질테니. 기존 관습대로 할 거면 내가 할 이유가 없잖나. 형구 등장 전은 모호하고 연극적으로, 이후엔 투박한 리얼리티로 찍은 것도 의도한 바인데, 그대로 영화에 구현돼 흡족하다.”

달라진 건 스케일이다. 애초 형구 역에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조진웅을 염두에 두고 쓰긴 했지만 “가능성 5% 이하로 생각하며” 건넨 시나리오를 그가 덥석 수락했다. 예산 2억원 미만 독립영화 계획이 전문 프로듀서(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붙고 신생 배급사(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까지 팔을 걷으면서 순제작비 7억5000만원, 총제작비 15억원짜리 프로젝트로 커졌다.

연기 경력 32년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으로 주목 받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고를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어느 순간 자신의 현실이 증발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린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연기 경력 32년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으로 주목 받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고를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어느 순간 자신의 현실이 증발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린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애초 제한된 관객을 생각했는데 마케팅‧배급 방식이 상업으로 가다 보니 기대와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영화 주제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와 별도로 영화가 존재하는…. 진짜 너는 뭐냐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웃음)”

“한번은 꿈이라 찍었는데, 차기작? 모르겠다”

2017년 가을에 시나리오 쓰고 이듬해 한달동안 집중적으로 촬영을 끝냈다. 평소 즐겨 가는 수안보 온천과 인근의 충주미륵대원지도 자연스레 로케이션 장소로 잡았다. “찍는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자꾸 웃음이 났는데, 이제 개봉을 하게 되니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코로나19까지 겹쳐 적막한 극장가에서 27만명을 끌어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상황. 감독 차기작도 미지수다. “정말 한번은 어릴 때부터 꿈이니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했는데, 다음번엔 책임을 지고 가치 있는 무엇을 해야 할텐데, 솔직히 모르겠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각본 ·연출을 맡아 데뷔한 정진영 감독의 촬영 현장 모습. 연기 경력 32년의 충무로 베테랑으로서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각본 ·연출을 맡아 데뷔한 정진영 감독의 촬영 현장 모습. 연기 경력 32년의 충무로 베테랑으로서 "예술이란 도전 아닌가. 망신당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공교롭게도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맡은 역할이 조난사고로 인해 기억이 22살로 회귀한 가장 김상식이다. 무뚝뚝한 가장으로서 보낸 애증의 세월을 잊고 아내 ‘숙이씨’(원미경)에게 처음 같은 순정을 되풀이 하는 모습이 이날 인터뷰로 만난 정진영과 닮았다. 드라마 속 노부(老父)처럼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한 채 열정으로 눈을 빛내며 그가 말했다.

“정체성을 질문하는 (내 영화) 주제가 올드할 수 있지만, 제가 나이든 사람인 걸요. 젊은이들이 원하는 소재는 모르겠고, 내 이야기를 내 식대로 투박하게 던지는 게 최선이죠. 각자 다양하게 즐기고 비판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준익 감독이 ‘후기 찾아 보지마. 창자가 도려내진다. 네 성격 아는데 그것 못 버텨’ 하셔서 ‘그럼 안봐야겠다’ 답했는데, 실은 언론시사회 끝나고 다음날 밤 다 봐버렸어요.(웃음).”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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