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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상황극 실행범 무죄? 항소한 검찰이 내민 '휴대폰 증거'

중앙일보

입력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 올라온 강간 상황극 유도 글을 보고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가 무죄 선고를 방은 남성에 대해 검찰이 항소했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전지검은 '강간 상황 유도 글'에 속아 실제로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30대 남성 사건에 대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중앙포토]

대전지검은 '강간 상황 유도 글'에 속아 실제로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30대 남성 사건에 대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중앙포토]

16일 대전지검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1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 강간 혐의와 절도 혐의로 기소된 뒤 무죄 선고를 받은 오모(39)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인 대전지법 형사11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전지검, 11일 대전지법에 항소장 제출 #법원, 1심에서 30대 남성에게 무죄 선고 #검찰 "성폭력 책임 피해자에 전가" 주장

검찰은 오씨가 강간 상황극을 계획한 이모(29)씨와 주고받은 채팅 대화 내용이나 피해 여성의 저항 등으로 미뤄 상황극이 아닌 실제 범행이라는 점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오씨가 성폭행 상황임을 알았는데도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판단 근거로 ▶피해자가 사전에 약속한 대로 문을 열여주지 않자 오씨가 돌아가려고 한 점 ▶돌아가려던 오씨가 이씨의 문자(올라가서 시작하세요)를 보고 다시 문을 두드린 점 ▶상황극이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점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버린 점 등을 들었다.

항소 이유서에서 검찰은 “법원 판단은 여성이 강하게 반항하지 않았다면 강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피해자가 반항하고 겁에 질렸다면 상황극이 맞는지 의심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1심 선고가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 판결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대전지법은 지난 4일 이른바 '강간 상황극'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중앙포토]

대전지법은 지난 4일 이른바 '강간 상황극'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중앙포토]

지난 4일 진행된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오씨가)자신의 행위를 범행이라고 인식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오씨가 피해자를 강간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씨에게 속은 오씨가 강간범 역할을 하며 성관계로만 인식했다는 게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어 “오씨가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때 피해자가 지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다”며 “강압적으로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피해자가 연기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반항이 심하지 않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1심 선고 직후에도 검찰은 “사안의 성격이나 피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할 때 법원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며 항소할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검찰의 항소장 제출 소식을 전해 들은 오씨는 변호인 선임 등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에서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씨도 최근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냈다. 그는 항소장에서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직권으로 변경한 것과 양형의 부당함에 대해 부당함을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에 대해 ‘주거침입 강간 교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재판부는 그를 ‘주거침입 강간 간접정범’으로 인정,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5월 인재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여성가족위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심의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인재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여성가족위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심의했다. 연합뉴스

간접정범은 죄가 없거나 과실로 범행한 다른 사람을 일종의 도구로 이용해 간접적으로 범죄를 실했다고 판단할 때 적용한다. 애초 이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이씨에 대해서도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오씨가 피해 여성을 채팅 앱의 대화 상대자로 착각했다고 보기에 여러 의문점이 있다”며 “항소심에서 실체에 부합하는 판결이 선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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