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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적 의도로 기본소득 도입 땐 국가 재정 위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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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헤이키 히일라모

헤이키 히일라모

기본소득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에서 쏘아 올린 논란이지만 냉철한 경제적 분석이 우선이다. ‘기본소득 선배’격인 핀란드의 기본소득 전문가를 찾아 전화 인터뷰를 했다. 헤이키 히일라모(사진) 헬싱키대 사회정책학부 교수다. 핀란드는 2017~2018년에 걸쳐 약 2000명의 실업자를 무작위로 뽑아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전국 단위 지급 실험은 핀란드가 유일하다. 히일라모 교수는 최근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헤이키 히일라모 헬싱키대 교수 #핀란드 3년 전 실험했지만 실패 #복지장치 잘 돼 제도 효과 미미 #청년 고실업률 한국 유혹받겠지만 #기본소득,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히일라모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관련 논의가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며 “대선 주자를 포함한 유력 정치인 개개인이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논란이 정치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최근 낸 보고서에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을 ‘실패’로 규정했다. 왜인가.
“기본소득이 효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은 한정돼있다. 핀란드는 인구 규모도 적고(554만명) 이미 다양한 복지 장치가 법제화돼있어 사회보장 수준도 높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이 발휘하는 효과는 미미했다.”(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전국 단위에서 2000명의 실업자를 무작위로 뽑아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6만5000원)를 지급하고 다른 실업자 집단과 고용 효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본소득으로 실업자들이 구직 과정에서 도움을 얻고 일자리를 다시 얻도록 하는 게 실험의 목표였다. 그러나 기본소득 전과 후에 따른 고용 효과는 미미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을 옹호하는 이들은 “행복감은 높아졌다”고 주장하는데.
“감성적 접근일뿐 계량적 결과가 못 된다. 기본소득의 요체는 ‘선진국에서 부의 과실을 국민 모두가 나눠야 한다’는 것인데, 그 방법론이 ‘헬리콥터 머니(무작위로 뿌리는 돈)’라면 안 된다. 근로 의욕 고취 효과도 없다.”  
코로나19가 기본소득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나.
“미국 등에서 국민에게 지급한 지원금은 사실상의 기본소득이다. 일각에선 ‘국민을 위한 양적완화(QE)’라고도 부르던데,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필요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계속해서 실버 불릿(silver bullet·악령을 쫓아내는 특효약)일 수는 없다. 기본소득이 일종의 공짜 월급이 된다면 그 효과도 곧 사라지게 돼 있다.”
한국도 재난지원금을 일괄 지급했는데.
“중요한 건 그 국가의 경제 상황과 국민의 근로의욕이다. 한국인은 근면성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기본소득을 누구나 지급한다? 대기업 총수부터 실업자까지 일괄적으로? 글쎄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있다. 한국의 경우 최근 젊은 층의 실업률이 높다는 점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젊은이들이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꽤 유혹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한국에선 유력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나섰는데.
“기본소득은 경제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표 집결엔 단기적 효과를 발휘할지 몰라도, 국가의 재정 및 세제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다면 위험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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