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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 힘으로 밀어붙여 법사위 쥐었다…6개 상임위 선출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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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巨與) 국회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당·열린민주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 등 범여(汎與) 187석으로 법제사법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국방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의 구성을 밀어붙였다. 이날 선출된 상임위원장은 윤호중 법사위원장, 윤후덕 기재위원장, 송영길 외통위원장, 민홍철 국방위원장, 이학영 산자위원장, 한정애 복지위원장 등으로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이들 상임위는 정부가 이달 초 제출한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와 경색된 남북관계 관련 국회 현안보고 등에 필요한 상임위다.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8개 상임위원장 투표를 마친 뒤 기표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8개 상임위원장 투표를 마친 뒤 기표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4시쯤 6개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고, 6개 상임위의 상임위원 선임을 마친 뒤 해당 의원들에게 통보했다. 아직 자당(自黨) 몫 상임위원 선임 요청안을 제출하지 않은 통합당의 경우 박 의장이 임의로 선임해 6개 상임위에 각각 배정했다. 총선 후 첫 집회일(지난 5일) 이후 2일 이내(지난 7일)에 상임위원 선임 요청이 없으면 의장이 선임할 수 있다는 국회법 48조에 따라서다. 제1야당을 배제한 단독 원(院) 구성은 12대 후반기 국회 때인 1987년 5월 13일 이후 약 33년 만이다. 87년 6월 민주화 이후에는 전례가 없다. 박 의장은 이날 본회의를 강행한 데 대해 “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고 했다.

김태년 민주당,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전날(14일) 심야 회동에 이어 이날 오전 11시 박 의장 주재로 만난 자리에서 최종 담판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 직후 “박 의장이 지난주 금요일(지난 12일) 본회의에서 약속한 대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오늘 상정해달라고 강력히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민주당과 집권세력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명을 남길 폭거를 기어코 자행하겠다고 조금 전 저에게 최종 통보했다”며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은 처음부터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었다”고 반발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아래)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의사진행 발언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위는 박병석 국회의장.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주호영(아래)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의사진행 발언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위는 박병석 국회의장. [연합뉴스]

걸림돌은 단 하나, 법사위였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모두 법사위를 자당(自黨) 몫으로 주장했고, 그 고집을 꺾지 않았다. 15대 국회 후반기(1998년) 이후 권력 분산 차원에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한 당이 독식하지 않는다는 게 관행으로 이어졌으나 이번엔 민주당이 관행을 깨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본회의를 앞두고 “법사위를 포함한 11개 상임위를 민주당이 갖고 나머지 6개 상임위와 예산결산특위를 통합당이 가지는 내용의 가(假)합의안을 도출했는데 통합당이 의원총회 후 이를 깼다”(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고 주장했지만, 통합당은 “민주당의 일방적인 제안이었다”(주 원내대표)고 반박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후 통합당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이 아무것도 없었다. 법사위 아니면 죽음을, 단 하나였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9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박병석 국회의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9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앞서 이날 오전 민주당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협상이 안 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먼저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한 최고위원)고 한다. 이 최고위원은 “김 원내대표가 6, 7개 상임위원장은 추진해야 할 것 같다고 보고했고, 박 의장에게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어진 공개회의에서 “참을 만큼 참았고,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했다. 이제 갈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극성 친문 성향의 민주당 권리당원의 압박도 영향을 줬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욕먹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 당원들이 참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는 ‘문자 폭탄’을 예고하듯 박 의장의 휴대전화 번호가 공유되기도 했다.

통합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약 2시간 반가량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선거 과정에서 얘기했지만 뭐가 잘못한 게 많아서 법원·검찰 장악해야 여당이 직성이 풀리는지 그 연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이런 나라냐. 권력은 세게 잡고 모을수록 힘이 셀 것 같지만 모래와 같다. 권위주의 시절이라고 여러분(민주당)이 비판하던 그 시대도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발언한 뒤 퇴장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본회의 개의 직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민주주의 파괴하는 의회독재 민주당은 각성하라” “개원강행 협치파괴 박병석 국회의장은 중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제21대 국회 첫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가 열린 15일 항의 구호를 외치는 미래통합당 의원들 사이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 첫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가 열린 15일 항의 구호를 외치는 미래통합당 의원들 사이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6개 상임위 단독 구성으로 향후 국회 운영은 파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민주당은 16일부터 구성을 완료한 상임위부터 가동하고, 아직 상임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은 상임위도 정책간담회 등을 여는 방식으로 문을 연다는 방침이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앞으로 2~3회에 걸쳐 남은 상임위원장 선출에 통합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추경안 심사에 필수적인 예결위원장도 민주당 몫으로 선출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지난 12일 민주당은 예결위원장을 통합당 몫으로 양보했다고 밝혔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이날 당 의총에서 “야당도 추가로 협상하겠지만 오래 기다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본회의 개의 후 열린 당 비공개 의총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하준호·김홍범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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